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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Bediuzzaman Said Nursi &#8211; Koreanur</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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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Bediuzzaman Said Nursi &#8211; Koreanur</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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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질문: 인간을 왜 창조하셨을까요?</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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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CDATA[admin]]></dc:creator>
		<pubDate>Mon, 07 Oct 2024 09:12:44 +00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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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답변: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인간을 왜 창조하셨을까요? 자기중심적인 자아를 따라가면서 자신 또는 남들을 억압하기 위해서일까요? 당연히 아닙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위해서일까요? 숭배라는 옷의 책임을 부여해 꾸란에서 명령하신 것들을 실천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상점에 들러 어떤 전자 제품을 산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 제품의 박스 안에 사용 설명서를 발견하였습니다. [&#8230;]]]></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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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id="viewer-90bqe289593">답변: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인간을 왜 창조하셨을까요? 자기중심적인 자아를 따라가면서 자신 또는 남들을 억압하기 위해서일까요? 당연히 아닙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위해서일까요? 숭배라는 옷의 책임을 부여해 꾸란에서 명령하신 것들을 실천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p>



<p id="viewer-idgow289594">여기서 중요한 점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상점에 들러 어떤 전자 제품을 산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 제품의 박스 안에 사용 설명서를 발견하였습니다. 왜 사용 설명서를 그 안에 넣었을까요? 그 제품을 쉽고 편안하게 사용하게 하기 위해서 아닌가요? 물론 사용설명서 없이도 사용은 가능합니다. 하지만 금방 고장 나거나 아니면 아주 중요한 특징을 모르고 사용하게 됩니다.</p>



<p id="viewer-iovpt289595">바로 ‘꾸란의 명령’이라고 할 때 일부 사람들은 무서워합니다. 마치 꾸란이 인간을 새장 안에 가두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꾸란은 우리를 위한 사용 설명서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창조하셨으며, 우리를 우리보다 더 잘 알고 계십니다.</p>



<p id="viewer-tyis9289596">우리에게 어떤 특징들이 있는지, 이런 특징들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어떻게 사용해야 더 오래 사용할 수 있는지, 꾸란에서 우리에게 알려주십니다. 만약 우리가 숭배의 범위 안에서 꾸란의 명령을 실천한다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그 특성들이 더욱 빛날 것입니다. 게다가 오로지 60년, 70년이라는 일시적인 시간에 제한되지도 않으며 영원한 아름다움을 얻을 것입니다.</p>



<p id="viewer-vt101289597">이것을 어디서 알 수 있을까요? 먼저 꾸란으로부터 시작해 모든 하늘의 책(구약, 신약 등)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 이외에도 예언자들, 순수한 학자들, 성인들, 높은 지식을 가진 학자들, 진리를 찾는 자들 등….</p>



<p id="viewer-0c96x289598">진실로 이것을 조금이라도 실행한 사람은 이 세상에서 더욱 아름답게 살며 꾸란에서 이야기한 것들이 올바른 것임을 자신 스스로 이해합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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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Bedi-Uzzaman Said Nursi&#8217;nin hayatı</title>
		<link>https://koreanur.com/bedi-u-zaman-seyyid-nursinin-hayati/</link>
		
		<dc:creator><![CDATA[admin]]></dc:creator>
		<pubDate>Fri, 27 Sep 2024 07:18:36 +0000</pubDate>
				<category><![CDATA[Bediuzzaman Said Nursi]]></category>
		<category><![CDATA[Belief and Unbelief]]></category>
		<category><![CDATA[Risale-i Nur]]></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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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 class="wp-block-image size-large"><img fetchpriority="high" decoding="async" width="724" height="1024" src="https://koreanur.com/wp-content/uploads/2024/09/베디우즈자만-724x1024.jpg" alt="" class="wp-image-383" srcset="https://koreanur.com/wp-content/uploads/2024/09/베디우즈자만-724x1024.jpg 724w, https://koreanur.com/wp-content/uploads/2024/09/베디우즈자만-212x300.jpg 212w, https://koreanur.com/wp-content/uploads/2024/09/베디우즈자만-768x1086.jpg 768w, https://koreanur.com/wp-content/uploads/2024/09/베디우즈자만-1086x1536.jpg 1086w, https://koreanur.com/wp-content/uploads/2024/09/베디우즈자만-1448x2048.jpg 1448w, https://koreanur.com/wp-content/uploads/2024/09/베디우즈자만-800x1131.jpg 800w, https://koreanur.com/wp-content/uploads/2024/09/베디우즈자만-scaled.jpg 1810w" sizes="(max-width: 724px) 100vw, 724px" /></fig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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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리살레이누르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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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CDATA[admin]]></dc:creator>
		<pubDate>Fri, 27 Sep 2024 07:04:22 +0000</pubDate>
				<category><![CDATA[Bediuzzaman Said Nursi]]></category>
		<category><![CDATA[Belief and Unbelief]]></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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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160; &#160;‘빛의 편지’라는 의미의 ‘리살레이누르(Risale-i Nur) 모음집’은 베디웃자만 사이드 누르시(Bediüzzaman Said Nursi)가 현대인의 사고방식에 의거해 꾸란을 주석한 6천 쪽에 달하는 전집입니다. 현대 사회에서 이슬람과 그 교리가 소위 과학과 이성이라는 이름 아래 공격받아옴에 따라, 베디웃자만 사이드 누르시(Bediüzzaman Said Nursi)는 ‘리살레이누르 모음집’에서 현대과학에 근거한 이성적 증명과 증거들을 제시함과 동시에 현시대와 깊은 관련이 [&#8230;]]]></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
<p>&nbsp; &nbsp;‘빛의 편지’라는 의미의 ‘리살레이누르(Risale-i Nur) 모음집’은 베디웃자만 사이드 누르시(Bediüzzaman Said Nursi)가 현대인의 사고방식에 의거해 꾸란을 주석한 6천 쪽에 달하는 전집입니다. 현대 사회에서 이슬람과 그 교리가 소위 과학과 이성이라는 이름 아래 공격받아옴에 따라, 베디웃자만 사이드 누르시(Bediüzzaman Said Nursi)는 ‘리살레이누르 모음집’에서 현대과학에 근거한 이성적 증명과 증거들을 제시함과 동시에 현시대와 깊은 관련이 있는 꾸란의 기적적인 면들을 서술함으로써 신앙의 진실을 증명하는 데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p>



<p>&nbsp; &nbsp;리살레이누르(Risale-i Nur) 모음집은 현세대와 미래 세대의 모든 사람의 신앙, 이슬람, 생각, 정신, 마음, 이성 등 필요한 모든 것과 꾸란의 진리들에 대한 답을 제시할 것입니다.</p>



<p>&nbsp; &nbsp;꾸란의 진리들을 입증하는 지식을 이해하기에 적합한 방식으로 설명하고 증명한 리살레이누르(Risale-i Nur) 모음집은 모든 인간을 위해 가장 중요한 주제인</p>



<ol class="wp-block-list">
<li>나는 누구인가?</li>



<li>어디서 왔는가?</li>



<li>어디로 가는가?</li>



<li>나의 의무는 무엇인가?</li>



<li>이 피조물들은 어디서 와 어디로 가는가?</li>



<li>본성과 진리는 무엇인가?</li>
</ol>



<p>등과 같은 질문들에 대한 답을 명확하고 확실하게, 매력적인 용어와 아름다운 표현으로 설명하며 영혼과 이성을 밝히고 만족시킵니다.</p>



<p>&nbsp; &nbsp;리살레이누르(Risale-i Nur)를 알기 위해서는 모음집 전체를 다 읽어야 합니다. 이 조그마한 책자에서는 광활한 바다의 오로지 한 두 방울에 해당하는 예로 몇 가지 부분만을 보여줍니다.</p>



<p>​</p>



<p>&nbsp; &nbsp;리살레이누르 모음집은 꾸란을 어떻게 해석하는 책인가?</p>



<p>꾸란에 대한 해석은 두 가지로 나뉩니다.</p>



<p>&nbsp; &nbsp;첫 번째: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꾸란의 해석입니다. 이는 꾸란의 글, 단어, 문장들의 의미들을 명확히 설명하고 증명합니다.</p>



<p>&nbsp; &nbsp;두 번째: 꾸란의 신앙에 관한 진리들을 강력한 논증들로 명확히 설명하고 증명합니다. 보통 잘 알려진 꾸란의 해석 책들은 이 부분을 아주 간략하게 다룹니다. 이에 반해 리살레이누르는 이 두 번째 부분을 중점적으로 다룹니다.</p>



<p>리살레이누르 모음집에서 다루는 주제</p>



<ol class="wp-block-list">
<li>인간은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인간을 이 세상에 보내신 지혜와 목적은 무엇인가?</li>



<li>하나님의 존재하심과 유일하심, 하나님의 이름들과 특성들에 대한 증명</li>



<li>꾸란이 하나님의 말씀임에 대한 증명</li>



<li>무함마드(그분에게 하나님의 평화가 깃들기를)께서 하나님의 사도임에 대한 증명</li>



<li>천사들의 존재에 대한 증명</li>



<li>죽음 후 부활에 대한 증명</li>



<li>운명에 관한 믿음에 대한 증명과 운명과 관련하여 머리속에 떠오르는 다양한 질문들에 대한 해답</li>



<li>비스밀라의 숨겨진 비밀</li>



<li>꾸란은 무엇인가? 꾸란에서 쓰는 표현은 어떠한가?</li>



<li>예배와 경배의 의미는 무엇인가? 예배를 정해진 시간에 드리는 지혜는 무엇인가?</li>



<li>영혼은 무엇인가? 영혼의 영원함에 대한 증명</li>



<li>승천의 밤(Mirac)의 진실과 지혜, 승천의 밤과 관련하여 머리속에 떠오르는 다양한 질문들에 대한 해답</li>



<li>사탄과 악, 재난과 고난들을 창조하신 지혜</li>



<li>이 세상과 인간을 창조함에 관한 비밀들</li>



<li>“너희가 너희 주님께 기도하지 않는다고 해도 나의 주님은 걱정하지 아니 하시니라”[1] 의 지혜</li>



<li>하디스(예언자의 언행록) 지식의 본질과 의미들, 하디스에 드는 의심들에 대한 해답들</li>



<li>순나의 중요성과 지혜</li>



<li>이슬람 세상의 협력과 연합 그리고 형제애와 사랑의 결과를 가져올 이흐라스(İhlas: 오로지 하나님의 만족을 위한 모든 행위)와 형제애의 원칙</li>



<li>아담을 천국에서 내보내 이 세상에 보내신 지혜</li>



<li>불신자들이 영원한 지옥에 거주하는 것이 완전히 공정한 것임에 대한 증명</li>



<li>히잡을 쓰는 것이 여성들의 본성임에 대한 증명                                       </li>



<li>등 사람들의 머리속에 떠오르는 수천 가지의 질문에 대한 증명을 리살레이누르 모음집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li>
</ol>



<p>[1] 꾸란 25장(푸르깐) 77절</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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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베디웃자만 사이드 누르시(Bediüzzaman Said Nursi)</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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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CDATA[admin]]></dc:creator>
		<pubDate>Thu, 26 Sep 2024 11:15:31 +0000</pubDate>
				<category><![CDATA[Bediuzzaman Said Nursi]]></category>
		<category><![CDATA[Risale-i Nur]]></category>
		<category><![CDATA[Signes of Miraculousness]]></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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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리살레이누르(Risale-i Nur) 모음집 저자 그는1877년 터키 비틀리스(Bitlis)주에 속한 누르스(Nurs) 라는 시골(아나톨리아의 동편)에서 태어났다. 아직 6살밖에 되지 않았을 때 학문(İlme)에 대해 궁금해하기 시작하였으며 아직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가족과 떨어져 유학하였다. 그는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주제들에 대해서도 아주 쉽게 이해하였으며, 신학 논쟁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그를 도처에서 주목하기 시작했다. 기억력도 비상해 읽은 [&#8230;]]]></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
<p>리살레이누르(Risale-i Nur) 모음집 저자</p>



<p>그는1877년 터키 비틀리스(Bitlis)주에 속한 누르스(Nurs) 라는 시골(아나톨리아의 동편)에서 태어났다. 아직 6살밖에 되지 않았을 때 학문(İlme)에 대해 궁금해하기 시작하였으며 아직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가족과 떨어져 유학하였다. 그는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주제들에 대해서도 아주 쉽게 이해하였으며, 신학 논쟁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그를 도처에서 주목하기 시작했다. 기억력도 비상해 읽은 책을 아주 쉽게 암기하여 꾸란 암송은 물론, 이슬람 문명사를 수놓은 주요 학자들의 저작까지 술술 외웠다. 20년이나 걸리는 공부를 불과 3개월 만에 마치는 등 학자들조차 그의 범상치 않은 뛰어난 능력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리고는 그의 출중함에 감탄한 한 이슬람 학자로부터 ‘시대에 비할 자가 없는 자’라는 의미의 ‘베디웃자만(Bediüzzaman)’ 이라는 칭호를 부여받았다. 그때가 바로 15살의 나이였다.</p>



<p>자신 스스로 과거의 사이드라는 의미의 ‘Eski Said’라 이름 지은 45세까지의 기간 동안 동부지역(Sark)과 서부지역(Garb)에서 여정을 보내며 이슬람 세상과 자신의 국가의 문제들을 스스로 겪고 몸소 체험한 후 가장 최우선으로 필요한 것이 교육이라는 것을 판단하였다. 이에 터키 동부지역에 ‘종교와 과학’을 함께 교육할 수 있는 대학교(Medresetüz Zehra)를 설립하기 위해 갖은 애를 썼다.</p>



<p>1차 세계대전에 제자들과 함께 자원으로 민병대를 구성하여 나라를 위해 전쟁에 참여하였다. 러시아에서 포로로 잡혀 약 3년간 억류되었으며, 그 후 탈출하여 온 이스탄불에서 울라마 개혁 위원회의 회원으로 임명되었고, 이스탄불에 있는 동안 출판했던 후투바트 시테(Hutuvat-ı Sitte: 여섯 단계) 라는 이름의 작품으로 점령군에 항의하였다. 1922년 후에는 앙카라에 초대받아 그곳에서 새 정부의 장관들에게 이슬람의 상징들(아잔 등)을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앙카라 정부에서 자신에게 제안한 종교부 장관자리를 거절하고, 1923년 5월 앙카라에서 반(Van)이라는 지역으로 가 그곳에서 경배와 꾸란의 사역으로 바쁘게 지냈다.</p>



<p>1925년에 반(Van)에서 지내고 있을 때 부르두르(Burdur)라는 지역으로, 또 그곳에서 바를라(Barla)라는 지역으로 유배 생활을 하였으며 그때부터 시작된 새로운 사이드라는 의미의 ‘Yeni Said’라는 이름으로 쉬지 않고 연속적으로 집필한 리살레이누르 작품들에서 신앙과 꾸란의 진리들을 설명하였다. 이러한 사역 활동이 국민들 사이에서 추앙받기 시작하자 반이슬람 정부에 의해 1935년에 에스키셰히르(Eskisehir)라는 도시에서, 1943년에는 데니즐리(Denizli)에서, 1947년에는 아피온(Afyon)에서, 1952년에는 이스파르타(İsparta), 카스타모누(Kastamonu), 에미르다으(Emirdağı)라는 도시들의 감옥에서 복역하게 되었고, 출소 후에도 유배와 연금 생활이 이어졌다.</p>



<p>그에게 허용된 것은 오로지 펜과 종이뿐이었으며 저술만이 유일한 길이었다. 한평생 그 집념으로 완성한 역작이 6,000쪽의 대작 꾸란을 주석한 &lt;리살레이누르(Risale-i Nur)&gt;이다. 서슬이 시퍼런 군사 독재 아래 출판과 복사는 불가능했다. 검열을 피하는 길은 오로지 필사뿐이었다. 6,000쪽의 책을 필사하고 또 필사함으로써 마을에서 마을로, 이웃에서 이웃으로 퍼져갔다. 손에서 손으로 전해져 터키 전역에 전파되었으며 현재는 전 세계에 각국의 언어로 번역되어 읽히고 있다.</p>



<p>그리고 그는 샨리우르파(Şanlı Urfa)라는 도시에서 1960년 4월 23일 라마단 25번째 날에 병으로 생을 마감하였다.</p>



<figure class="wp-block-image size-full"><img decoding="async" width="200" height="130" src="http://koreanur.com/wp-content/uploads/2024/09/655_1.jpg" alt="" class="wp-image-76"/></fig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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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무슬림들에게 있어서 경배와 숭배란 무엇일까?</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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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CDATA[admin]]></dc:creator>
		<pubDate>Thu, 26 Sep 2024 11:09:41 +0000</pubDate>
				<category><![CDATA[Allah]]></category>
		<category><![CDATA[Bediuzzaman Said Nursi]]></category>
		<category><![CDATA[Risale-i Nur]]></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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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숭배와 경배 숭배란 매일 매일 밤을 새우며 아침까지 예배를 드리는 것일까? 아니면 정해진 경배행위들을 더 많이 하는 것일까? 오로지 예배, 단식, 희사 등 무슬림에게 정해진 의무 경배 행위들만을 말하는 것일까? 또는 성원이나 예배소 등에서 드리는 경배행위들로 단정지어지는가? 아니면 숭배에는 더 넓은 의미가 포함되는 것일까? 그렇다. 지금까지 나열한 것들은 모두가 경배행위이다. [&#8230;]]]></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
<p><strong>숭배와 </strong><strong>경배</strong></p>



<p><strong>숭배</strong>란 매일 매일 밤을 새우며 아침까지 예배를 드리는 것일까? 아니면 정해진 경배행위들을 더 많이 하는 것일까? 오로지 예배, 단식, 희사 등 무슬림에게 정해진 의무 경배 행위들만을 말하는 것일까? 또는 성원이나 예배소 등에서 드리는 경배행위들로 단정지어지는가? 아니면 숭배에는 더 넓은 의미가 포함되는 것일까?</p>



<p>그렇다. 지금까지 나열한 것들은 모두가 경배행위이다. 이와 함께 문맹이거나 지식이 없는 사람들을 비롯해 지식인들, 예언자들과 성인들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쉽게 행할 수 있는 것들을 포함하는 것이 바로 경배이다.</p>



<p>숭배란 딱 정해진 선이 있다거나, 이런것들이다 라고 범위를 정할 수 없다. 매일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서 맞이하는 일들, 가족들 간에 행해지고 있는 행동이나 태도뿐 아니라 가장 사소한 것들까지 포함한 삶의 모든 부분에서 행해지고 있는 것들을 포함한다.</p>



<p><strong>숭배의 </strong><strong>사전적 </strong><strong>의미</strong>: 종이 되는 것, 노예가 되는 것, 복종하는 것 그리고 누군가와 완전히 관계를 맺는 것 등의 의미를 포함한 아랍어 &#8216;abd (종)&#8217;이라는 단어의 어근으로부터 파생되었다. 이렇듯 숭배라는 단어에는 아주 다양한 의미들이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현재 가장 많이 쓰여지고 있는 뜻은 ‘오로지 하나님의 만족을 위해 행동하는 것,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신 것들로 부터 피하는 것 그리고 그분의 종임을 인식하면서 살아가는 것’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p>



<p>숭배와 경배는 동일한 어근에서 파생되었으나 의미에 있어서 약간의 차이점이 있다. 수흐레베르디(Suhreverdi : 이슬람 수피학자)와 같은 학자들은 &#8216;종(abd, abid)&#8217;이라는 단어의 어근에 더 의미를 두며 숭배와 경배의 차이점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p>



<p>경배란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것들을 실천하면서 금지된 것들로부터 피하는 것 즉 &#8216;종이 되는것&#8217;이며 숭배란 매 순간 하나님의 보호 아래 있음을 알고 그분의 종임을 인식하며 행동하는 것이다.</p>



<p>즉, 숭배는 경배보다 더 넓은 의미를 포함함을 알 수 있다. 즉 숭배는 경배를 포함하는 더 포괄적인 의미인 것이다.</p>



<p>숭배란 삶의 모든 부분과 매 순간에 실천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에 매우 광범위하다. 그에 반해 경배란 예배, 단식, 희사, 선행과 같은 실천적인 행위들이다.</p>



<p>우리는 숭배와 일상생활을 따로 구별지어 생각하지 말자. 이슬람에서는 이렇게 따로 따로 구별짓지 않는다. 대부분의 다른 종교에서는 사람들은 정해진 장소(교회, 성당, 절 등)등에 가서 경배행위를 하지만 그곳에서 나오는 순간 경배행위가 끝나며, 그 장소밖에서는 즉시 자유롭게 행동한다.</p>



<p>하지만 이슬람에서는 이러한 구분이 없다. 즉 이슬람에서 신앙인은 성원에서 경배행위를 하고 난 뒤에도 끝나지 않는다. 그들의 삶의 터전 즉 가게, 직장, 집에서도 숭배 안에 있는 것이 가능하다. &#8216;영원한 평화&#8217; 즉 매 순간 하나님의 앞에 있음을 인식하면서 사는 것이다. 농사를 지을 때도, 여행을 할 때도 바로 숭배를 하는 것이다.</p>



<p><strong>즉 </strong><strong>이슬람에서 </strong><strong>숭배를 </strong><strong>보는 </strong><strong>관점은 </strong><strong>매우 </strong><strong>포괄적이며 </strong><strong>삶의 </strong><strong>모든 </strong><strong>부분을 </strong><strong>포함하는 </strong><strong>것을 </strong><strong>의미한다. &#8220;</strong><strong>이곳에 </strong><strong>숭배행위는 </strong><strong>없다&#8221; </strong><strong>라고 </strong><strong>말 </strong><strong>할 </strong><strong>수 </strong><strong>있는 </strong><strong>그 </strong><strong>어떤 </strong><strong>장소도 </strong><strong>없으며 </strong><strong>심지어 </strong><strong>자려고 </strong><strong>누워 </strong><strong>있는 </strong><strong>그 </strong><strong>순간에도 </strong><strong>숭배행위를 </strong><strong>하고 </strong><strong>있음을 </strong><strong>의미한다. </strong><strong>잠에서 </strong><strong>깬 </strong><strong>후 &#8220;</strong><strong>지금 </strong><strong>숭배할 </strong><strong>시간이야? </strong><strong>조금만 </strong><strong>더 </strong><strong>쉰 </strong><strong>후 </strong><strong>할게&#8221; </strong><strong>라고 </strong><strong>구별짓지 </strong><strong>말자.</strong></p>



<p><strong>왜냐하면 </strong><strong>우리 </strong><strong>무슬림들에게 </strong><strong>숭배행위란 24</strong><strong>시간을 </strong><strong>포함하며 </strong><strong>일 </strong><strong>분 </strong><strong>일 </strong><strong>초 </strong><strong>조차도 </strong><strong>예외일 </strong><strong>수 </strong><strong>없으니 </strong><strong>말이다. </strong><strong>말하자면 </strong><strong>무슬림들의 </strong><strong>세상 </strong><strong>전체가 </strong><strong>바로 </strong><strong>숭배를 </strong><strong>포함하고 </strong><strong>있는 </strong><strong>것이다.</strong></p>



<p>하나님의 종이 되는 것 중</p>



<figure class="wp-block-image size-large"><img decoding="async" width="1024" height="639" src="http://koreanur.com/wp-content/uploads/2024/09/risalei-nur-1024x639.jpg" alt="" class="wp-image-73" srcset="https://koreanur.com/wp-content/uploads/2024/09/risalei-nur-1024x639.jpg 1024w, https://koreanur.com/wp-content/uploads/2024/09/risalei-nur-300x187.jpg 300w, https://koreanur.com/wp-content/uploads/2024/09/risalei-nur-768x479.jpg 768w, https://koreanur.com/wp-content/uploads/2024/09/risalei-nur-1536x959.jpg 1536w, https://koreanur.com/wp-content/uploads/2024/09/risalei-nur-2048x1278.jpg 2048w, https://koreanur.com/wp-content/uploads/2024/09/risalei-nur-800x500.jpg 800w" sizes="(max-width: 1024px) 100vw, 1024px" /></fig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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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꾸란이란 무엇입니까?</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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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26 Sep 2024 11:03:49 +0000</pubDate>
				<category><![CDATA[Allah]]></category>
		<category><![CDATA[Bediuzzaman Said Nursi]]></category>
		<category><![CDATA[Belief and Unbelief]]></category>
		<category><![CDATA[Risale-i Nur]]></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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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스물다섯 번째 말씀 꾸란의 기적들 자비로우시고 자애로우신 하나님의 이름으로 قُل لَئِنِ اجْتَمَعَتِ الْإِنسُ وَالْجِنُّ عَلَىٰ أَن يَأْتُوا بِمِثْلِ هَٰذَا الْقُرْآنِ لَا يَأْتُونَ بِمِثْلِهِ وَلَوْ كَانَ بَعْضُهُمْ لِبَعْضٍ ظَهِيرًا “일러 가로되 인간과 진들이 서로 같이하여 이 꾸란과 같은 것을 만들려 해도 그들은 그와 같은 것을 만들지 못하리라. 비록 그들 서로가 서로를 [&#8230;]]]></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
<p><strong>스물다섯 </strong><strong>번째 </strong><strong>말씀</strong></p>



<p>꾸란의 기적들</p>



<p><strong>자비로우시고 </strong><strong>자애로우신 </strong><strong>하나님의 </strong><strong>이름으로</strong></p>



<p><strong>قُل لَئِنِ اجْتَمَعَتِ الْإِنسُ وَالْجِنُّ عَلَىٰ أَن يَأْتُوا بِمِثْلِ هَٰذَا الْقُرْآنِ لَا يَأْتُونَ بِمِثْلِهِ وَلَوْ كَانَ بَعْضُهُمْ لِبَعْضٍ ظَهِيرًا</strong></p>



<p><strong>“</strong><strong>일러 </strong><strong>가로되 </strong><strong>인간과 </strong><strong>진들이 </strong><strong>서로 </strong><strong>같이하여 </strong><strong>이 </strong><strong>꾸란과 </strong><strong>같은 </strong><strong>것을 </strong><strong>만들려 </strong><strong>해도 </strong><strong>그들은 </strong><strong>그와 </strong><strong>같은 </strong><strong>것을 </strong><strong>만들지 </strong><strong>못하리라. </strong><strong>비록 </strong><strong>그들 </strong><strong>서로가 </strong><strong>서로를 </strong><strong>돕는다 </strong><strong>해도 </strong><strong>그러하느라.”1</strong></p>



<p>도입 부분은 세 가지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p>



<p><strong>첫 </strong><strong>번째 </strong><strong>부분</strong></p>



<p><strong>질문:</strong> 꾸란은 무엇입니까? 어떻게 정의할 수 있습니까?</p>



<p><strong>답변:</strong> 19번째 말씀(리살레이누르 모음집 중)에서의 설명과 다른 말씀들에서 증명했듯이 꾸란은</p>



<p>· 커다란 삼라만상이라는 책의 변하지 않는 번역</p>



<p>· 창조의 증거들을 읽는 다양한 언어들의 영원한 번역가</p>



<p>· 보이지 않는 세상과 보이는 세상의 책의 해설자</p>



<p>· 땅과 하늘에 감춰진 하나님의 아름다운 이름들의 정신적인 보물들을 열어내는 자</p>



<p>· 사건들의 배열 안에 감춰진 진리를 여는 열쇠</p>



<p>· 보이는 세상에서의 보이지 않는 세상의 언어</p>



<p>· 보이는 세상의 장막 뒤에 감춰진 보이지 않는 세상에서 온 관대하신 하나님의 영원한 호의와 가장 찬미를 받으실 하나님의 영원한 말씀의 보물창고</p>



<p>· 정신적인 이슬람 세상의 태양, 기초, 지도</p>



<p>· 내세의 성스러운 지도</p>



<p>· 신의 본질, 속성, 이름들, 기능들을 자세히 설명하는 말, 명료한 해설, 결정적 증거, 알아듣기 쉬운 통역사</p>



<p>· 이 인간 세상의 교육자</p>



<p>· 큰 인간성인 이슬람의 빛과 물</p>



<p>· 인류의 진정한 지혜</p>



<p>· 인류에게 행복을 추구하도록 하는 진정하고 올바른 길을 알려주는 안내자와 지도자</p>



<p>· 규율의 책, 기도 책, 지혜의 책, 숭배의 책, 명령과 초대의 책, 찬미의 책, 생각하게 하는 책</p>



<p>· 모든 인간에게 정신적으로 필요한 모든 것들에 참조할 만한 많은 책을 포함하는 유일하고 종합적인 성스러운 책</p>



<p>· 모든 성인과 정직한 사람들과 현명한 사람들과 연구하는 자들의 다양한 길과 다른 방향들에 각각의 길에 맞고 그 길을 빛낼 그리고 각각 추구하는 목적에 맞는, 그것을 설명할 각각의 책을 드러내는 도서관으로 판단되는 하늘의 책이다.</p>



<p><strong>두 </strong><strong>번째 </strong><strong>부분</strong></p>



<p>꾸란은 숭고한 왕좌와 제일 위대한 이름과 각각의 이름의 제일 높은 단계로부터 나왔으므로 12번째 말씀(리살레이누르 모음집 중)에서 설명하고 증명했듯이, 꾸란은</p>



<p>· 모든 세상의 주님에 의한 하나님의 말씀.</p>



<p>· 모든 존재들의 신이라는 칭호로서의 하나님의 칙령</p>



<p>· 모든 하늘과 땅의 창조주의 이름으로의 말씀</p>



<p>· 절대적인 양육 관점에서 한 가지의 대화</p>



<p>· 결점 없는 삼라만상의 국왕의 영원한 설교</p>



<p>· 모든 것을 감싸는 넓은 자애로우신 분이라는 관점에서 가장 자비로우신 분의 호의의 공책</p>



<p>· 신성(神性)의 웅장함과 위엄이라는 관점에서, 시작에 어떤 암호가 있는, 소식들을 전하는 책</p>



<p>· 제일 위대한 이름을 포괄하는 혈통을 통한 숭고한 왕자의 모든 측면의 관점을 보는, 감사(勘査)하는, 지혜가 널리 퍼진 어떠한 결점도 없는 높고 숭고한 책이다.</p>



<p>‘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직함은 꾸란에 완전하고 적합하게 주어졌으며, 항상 주어지고 있다. 꾸란 다음으로는 다른 예언자들의 성서와 책들이 단계별로 있다. 다른 수많은 하나님의 말씀들은 일부분조차 특별한 특징들로, 부분적인 직함으로, 특정한 징후로, 특정한 이름으로, 한정된 양육으로, 특정한 통치권으로, 특별한 자비로 보이는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감의 형식으로 하는 대화이다. 천사들과 인간 그리고 동물들의 영감들은 보편적이거나 개인적인 관점에서 무척 다양하다.</p>



<p><strong>세 </strong><strong>번째 </strong><strong>부분</strong></p>



<p>꾸란은</p>



<p>· 각 세대의 다양한 모든 예언자의 책들과 방법들이 다른 모든 성인의 책자들과, 가는 길들이 다양한 모든 순수한 학자의 작품의 요약을 포함한,</p>



<p>· 6가지 방향의 맑은,</p>



<p>· 의심들의 어두움으로부터 정제된,</p>



<p>· 신뢰할 것은 확실한 하늘의 계시와 영원한 말씀인,</p>



<p>· 목적과 목표는 모두에게 보이는 영원한 행복인,</p>



<p>· 내부적 측면은 명백하고 순수한 인도인,</p>



<p>· 위에서 본 측면은 필수적인 신앙의 빛인,</p>



<p>· 아래에서 본 측면은 지식으로 확실하게 알 정도의 명백한 증거와 증명인,</p>



<p>· 오른쪽에서 본 측면은 경험으로 느끼듯이 마음과 양심의 복종인,</p>



<p>· 왼쪽에서 본 측면은 눈으로 볼 정도로 확실하게 이성과 지성을 지배하는,</p>



<p>· 결과물은 흔들리지 않고 확실하며 가장 자비로우신 분의 자애와 천국의 왕국인,</p>



<p>· 지위와 가치를 천사와 인간과 진들이 바로 인정하는, 하늘의 책이다.</p>



<figure class="wp-block-image size-large"><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width="1024" height="683" src="http://koreanur.com/wp-content/uploads/2024/09/quran-4178711_1920-1024x683.jpg" alt="" class="wp-image-68" srcset="https://koreanur.com/wp-content/uploads/2024/09/quran-4178711_1920-1024x683.jpg 1024w, https://koreanur.com/wp-content/uploads/2024/09/quran-4178711_1920-300x200.jpg 300w, https://koreanur.com/wp-content/uploads/2024/09/quran-4178711_1920-768x512.jpg 768w, https://koreanur.com/wp-content/uploads/2024/09/quran-4178711_1920-1536x1024.jpg 1536w, https://koreanur.com/wp-content/uploads/2024/09/quran-4178711_1920-576x384.jpg 576w, https://koreanur.com/wp-content/uploads/2024/09/quran-4178711_1920-1152x768.jpg 1152w, https://koreanur.com/wp-content/uploads/2024/09/quran-4178711_1920-800x533.jpg 800w, https://koreanur.com/wp-content/uploads/2024/09/quran-4178711_1920-165x109.jpg 165w, https://koreanur.com/wp-content/uploads/2024/09/quran-4178711_1920.jpg 1920w" sizes="auto, (max-width: 1024px) 100vw, 1024px" /></figure>



<p>1 꾸란 17장(이스라) 88절</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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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베디웃자만 사이드 누르시(Bediüzzaman Said Nursi)</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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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26 Sep 2024 11:01:01 +00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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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CDATA[Bediuzzaman Said Nursi]]></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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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모음집 저자 그는1877년 터키 비틀리스(Bitlis)주에 속한 누르스(Nurs) 라는 시골(아나톨리아의 동편)에서 태어났다. 아직 6살밖에 되지 않았을 때 학문(İlme)에 대해 궁금해하기 시작하였으며 아직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가족과 떨어져 유학하였다. 그는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주제들에 대해서도 아주 쉽게 이해하였으며, 신학 논쟁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그를 도처에서 주목하기 시작했다. 기억력도 비상해 읽은 책을 아주 [&#8230;]]]></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
<p>모음집 저자</p>



<p>그는1877년 터키 비틀리스(Bitlis)주에 속한 누르스(Nurs) 라는 시골(아나톨리아의 동편)에서 태어났다. 아직 6살밖에 되지 않았을 때 학문(İlme)에 대해 궁금해하기 시작하였으며 아직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가족과 떨어져 유학하였다. 그는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주제들에 대해서도 아주 쉽게 이해하였으며, 신학 논쟁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그를 도처에서 주목하기 시작했다. 기억력도 비상해 읽은 책을 아주 쉽게 암기하여 꾸란 암송은 물론, 이슬람 문명사를 수놓은 주요 학자들의 저작까지 술술 외웠다. 20년이나 걸리는 공부를 불과 3개월 만에 마치는 등 학자들조차 그의 범상치 않은 뛰어난 능력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리고는 그의 출중함에 감탄한 한 이슬람 학자로부터 ‘시대에 비할 자가 없는 자’라는 의미의 ‘베디웃자만(Bediüzzaman)’ 이라는 칭호를 부여받았다. 그때가 바로 15살의 나이였다.</p>



<p>자신 스스로 과거의 사이드라는 의미의 ‘Eski Said’라 이름 지은 45세까지의 기간 동안 동부지역(Sark)과 서부지역(Garb)에서 여정을 보내며 이슬람 세상과 자신의 국가의 문제들을 스스로 겪고 몸소 체험한 후 가장 최우선으로 필요한 것이 교육이라는 것을 판단하였다. 이에 터키 동부지역에 ‘종교와 과학’을 함께 교육할 수 있는 대학교(Medresetüz Zehra)를 설립하기 위해 갖은 애를 썼다.</p>



<p>1차 세계대전에 제자들과 함께 자원으로 민병대를 구성하여 나라를 위해 전쟁에 참여하였다. 러시아에서 포로로 잡혀 약 3년간 억류되었으며, 그 후 탈출하여 온 이스탄불에서 울라마 개혁 위원회의 회원으로 임명되었고, 이스탄불에 있는 동안 출판했던 후투바트 시테(Hutuvat-ı Sitte: 여섯 단계) 라는 이름의 작품으로 점령군에 항의하였다. 1922년 후에는 앙카라에 초대받아 그곳에서 새 정부의 장관들에게 이슬람의 상징들(아잔 등)을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앙카라 정부에서 자신에게 제안한 종교부 장관자리를 거절하고, 1923년 5월 앙카라에서 반(Van)이라는 지역으로 가 그곳에서 경배와 꾸란의 사역으로 바쁘게 지냈다.</p>



<p>1925년에 반(Van)에서 지내고 있을 때 부르두르(Burdur)라는 지역으로, 또 그곳에서 바를라(Barla)라는 지역으로 유배 생활을 하였으며 그때부터 시작된 새로운 사이드라는 의미의 ‘Yeni Said’라는 이름으로 쉬지 않고 연속적으로 집필한 리살레이누르 작품들에서 신앙과 꾸란의 진리들을 설명하였다. 이러한 사역 활동이 국민들 사이에서 추앙받기 시작하자 반이슬람 정부에 의해 1935년에 에스키셰히르(Eskisehir)라는 도시에서, 1943년에는 데니즐리(Denizli)에서, 1947년에는 아피온(Afyon)에서, 1952년에는 이스파르타(İsparta), 카스타모누(Kastamonu), 에미르다으(Emirdağı)라는 도시들의 감옥에서 복역하게 되었고, 출소 후에도 유배와 연금 생활이 이어졌다.</p>



<p>그에게 허용된 것은 오로지 펜과 종이뿐이었으며 저술만이 유일한 길이었다. 한평생 그 집념으로 완성한 역작이 6,000쪽의 대작 꾸란을 주석한 &lt;리살레이누르(Risale-i Nur)&gt;이다. 서슬이 시퍼런 군사 독재 아래 출판과 복사는 불가능했다. 검열을 피하는 길은 오로지 필사뿐이었다. 6,000쪽의 책을 필사하고 또 필사함으로써 마을에서 마을로, 이웃에서 이웃으로 퍼져갔다. 손에서 손으로 전해져 터키 전역에 전파되었으며 현재는 전 세계에 각국의 언어로 번역되어 읽히고 있다.</p>



<p>그리고 그는 샨리우르파(Şanlı Urfa)라는 도시에서 1960년 4월 23일 라마단 25번째 날에 병으로 생을 마감하였다.</p>



<figure class="wp-block-image size-full"><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width="840" height="471" src="http://koreanur.com/wp-content/uploads/2024/09/beduuzzaman.jpg" alt="" class="wp-image-56" srcset="https://koreanur.com/wp-content/uploads/2024/09/beduuzzaman.jpg 840w, https://koreanur.com/wp-content/uploads/2024/09/beduuzzaman-300x168.jpg 300w, https://koreanur.com/wp-content/uploads/2024/09/beduuzzaman-768x431.jpg 768w, https://koreanur.com/wp-content/uploads/2024/09/beduuzzaman-800x449.jpg 800w" sizes="auto, (max-width: 840px) 100vw, 840px" /></fig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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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부활의 의미</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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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26 Sep 2024 11:00:09 +0000</pubDate>
				<category><![CDATA[Allah]]></category>
		<category><![CDATA[Bediuzzaman Said Nursi]]></category>
		<category><![CDATA[Risale-i Nur]]></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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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열 번째 말씀 부활과 내세 자비로우시고 자애로우신 하나님의 이름으로 فَٱنظُرْ إِلَىٰ ءَاثَٰرِ رَحْمَتِ ٱللَّهِ كَيْفَ يُحْىِ ٱلْأَرْضَ بَعْدَ مَوْتِهَا إِنَّ ذَٰلِكَ لَمُحْىِ ٱلْمَوْتَىٰ وَهُوَ عَلَىٰ كُلِّ شَىْءٍ قَدِيرٌ “그러나 하나님 은혜의 예증을 보라. 그분께서 죽은 대지를 어떻게 생동케 하느뇨. 그와 마찬가지로 그분은 죽은 자를 살게 하시니 이는 그분께서 모든 일에 [&#8230;]]]></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
<p><strong>열 </strong><strong>번째 </strong><strong>말씀</strong></p>



<p>부활과 내세</p>



<p>자비로우시고 자애로우신 하나님의 이름으로</p>



<p><strong>فَٱنظُرْ إِلَىٰ ءَاثَٰرِ رَحْمَتِ ٱللَّهِ كَيْفَ يُحْىِ ٱلْأَرْضَ بَعْدَ مَوْتِهَا إِنَّ ذَٰلِكَ لَمُحْىِ ٱلْمَوْتَىٰ وَهُوَ عَلَىٰ كُلِّ شَىْءٍ قَدِيرٌ</strong></p>



<p><strong>“</strong><strong>그러나 </strong><strong>하나님 </strong><strong>은혜의 </strong><strong>예증을 </strong><strong>보라. </strong><strong>그분께서 </strong><strong>죽은 </strong><strong>대지를 </strong><strong>어떻게 </strong><strong>생동케 </strong><strong>하느뇨.</strong></p>



<p><strong>그와 </strong><strong>마찬가지로 </strong><strong>그분은 </strong><strong>죽은 </strong><strong>자를 </strong><strong>살게 </strong><strong>하시니 </strong><strong>이는 </strong><strong>그분께서 </strong><strong>모든 </strong><strong>일에 </strong><strong>전지전능하시기 </strong><strong>때문이라”1</strong></p>



<p><strong>아홉 </strong><strong>번째 </strong><strong>진리2</strong></p>



<p><strong>죽이는 </strong><strong>것과 </strong><strong>생명을 </strong><strong>주는 </strong><strong>것의 </strong><strong>문이다. </strong><strong>생존하시며 </strong><strong>스스로 </strong><strong>존재하시며 </strong><strong>생명과 </strong><strong>죽음을 </strong><strong>주시는 </strong><strong>분이라는 </strong><strong>이름들의 </strong><strong>징후이다.</strong></p>



<p>· 죽고 마른 거대한 이 세상을 다시 소생시키시며,</p>



<p>· 그 소생 시 삼십만 가지 이상의 창조된 피조물들 각각을 (인간의 부활 같은) 놀랄 만한 부활과 배치로 그분의 권능을 보여주시는,</p>



<p>· 그 부활과 배치 시, 끝이 없는 혼란 가운데 무한한 구별과 구분으로 모든 것을 아우르는 지식을 보여주시는,</p>



<p>· 하늘 전체의 칙령들로 인간들의 부활을 약속하심으로써 모든 종의 시선을 영원한 행복으로 바꾸시는,</p>



<p>· 모든 피조물들이 서로 의논하고 어깨를 나란히 하게 하시며 협동하게 하시는,</p>



<p>· 명령과 권능 안의 축에서 운영하시며 그들이 서로 협력하고 복종하게 하면서 양육하심의 위대함을 보여주시는,</p>



<p>· 인간을 이 세상이라는 나무의 가장 포괄적이며 가장 섬세하고 가장 연약하며 가장 간청하는 과일로서 창조하시어 자신과의 대화 상대로 정해 모든 것들이 인간에게 복종케 하도록 하는 것으로 인간을 얼만큼 중요하게 생각하시는지 보여주시는,</p>



<p>이 전능하고 자비로우신 분 그리고 모든 것을 아시고 지혜로우신 분께서 최후의 심판의 날을 정하지 않으시고 부활을 시키지 않으시거나 못하시겠는가? 또는 인간에게 다시 생명을 주지 않으시거나 아니면 하지 못하시는 것이 과연 가능하단 말인가? 또는 최고의 재판3을 열지 못하시고, 천국과 지옥을 창조하지 못하시겠는가? 결코 말도 안 되는 소리이다.</p>



<p>그렇다. 이 세상의 영광스러우신 권리자께서는 매 세대, 매년, 매일 이 좁은 일시적인 지상에서 거대한 부활과 최후의 심판의 날의 광장의 아주 많은 예시와 셀 수 없는 표시들과 증거들을 창조하신다.</p>



<p>예를 들면 봄에 볼 수 있듯이 5, 6일 안에 크고 작은 삼십만 가지 이상의 갖가지 종류의 동물들과 식물들을 부활시키고 흩어지게 하신다. 모든 나무와 식물의 뿌리들과 마찬가지로 일부 동물들 또한 그대로 재 창조 시키고 복원시키며 다른 것들도 유사할 정도로 비슷하게 창조하신다. 더군다나 그 외형은 아주 미세한 차이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완전한 분리와 식별로, 아주 빠르며 쉽고 넓게 완전한 질서와 균형으로 6일 또는 6주 만에 부활이 된다.</p>



<p>이러한 일들을 행하신 분에게 과연 어떠한 일이 힘이 들며, 하늘과 땅을 6일 만에 창조하지 못하고, 인간을 단 한번의 소리인 싸이하(Sayha)4로 부활시키지 못한다는 것이 과연 말이 되는가? 결코 말도 안 되는 소리일 것이다!</p>



<p>흐릿하거나 사라져버린 글자들이 있는 삼십만 권의 책을 오로지 한 페이지에 전혀 섞이지 않고, 실수와 결함이 없이, 그 어떤 누락도 없이, 꽤 완벽하게, 한 시간 만에 쓰는 기적을 보여주는 어떤 작가가 있다고 가정해 보자. 누군가가 당신에게 “이 작가는 물에 빠져 글자가 지워져 버린 자신이 쓴 책을 단 일 분 만에 그의 기억으로 다시 새로 쓸 것이라네”라고 말한다면 “불가능한 일이네, 절대 믿을 수 없네”라고 말할 수 있단 말인가?</p>



<p>또는 기적을 보여주는 어떤 왕이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거나 주의를 주기 위해서 한 번의 손짓으로 산들을 들어 올리거나, 나라들을 변화시키거나, 바다를 땅으로 바꾸는 것을 당신이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큰 바위가 계곡으로 굴러 그 왕의 연회에 초대된 사람들이 지나가야 할 길을 막아 그들이 지나가지 못하고 있는 상황을 봤을 때, 누군가가 당신에게 “그 왕은 그 돌의 크기와 상관없이 한 번의 손짓으로 움직여 없애버릴 것이라네. 자신의 손님들을 그 길에 그대로 놔두지 않을 것이라네”라고 한다면, 당신은 “들어 올리지 못하네. 또는 들어 올리지 않을 거라네”라고 말할 수 있단 말인가?</p>



<p>또는 어떤 분이 하루 만에 아주 규모가 큰 군대를 새롭게 집합시킴에도 불구하고 누군가 그 분에 대해서 말하길, “그분은 휴식을 취하기 위해 분산된 대대들을 오로지 한 번의 나팔소리로 바로 한 곳으로 집합 시켜 훈련대열로 모이게 한다네”라고 한다면, “믿을 수 없네”라고 하는 것이 얼마나 제정신이 아닌 것인지를 알아야 할 것이다.</p>



<p>위의 세 가지 비유적인 이야기를 이해했다면 보게나. Nakkâş-ı Ezelî5 께서 우리의 눈앞에서 겨울의 하얀색 페이지를 바꾸어 봄과 여름의 녹색의 잎을 여시고, 지상의 페이지에 삼십만 가지 이상의 각기 다양한 종을 권능과 운명의 펜으로 가장 아름다운 형상으로 쓰신다. 그 종들은 서로 함께하지만 서로 섞이지 않는다. 또한 동시에 쓰신다. 말하자면 그 종들을 순서대로 쓰지 않으셔도 된다.6 또한 그 종들의 구조와 모양을 각각 다르게 하시면서 전혀 놀랍게 하지 않으신다. 더군다나 전혀 잘못 쓰지 않으신다.</p>



<p>그렇다. 가장 큰 나무의 영혼 프로그램을 가장 작은 점만 한 씨앗 안에 넣어 보존하시는 Zat-ı Hakm-i Hafız7께서 “죽은 사람들의 영혼들을 어떻게 보존할 수 있겠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또한 이 지구를 새총의 돌을 쏘는 것처럼 바꾸시는 권능 하신 분께서 “내세에 가는 손님들의 길에서 어떻게 이 지구를 들어 올릴 것이며 옮길 것인가?”라고 말할 수 있을까?</p>



<p>또한 아무것도 아닌 것에서, 완전히 새롭게 모든 생명체라는 군대에 속한 모든 신체라는 부대에게 완벽한 규율로 분자들을</p>



<p><strong>كُن فَيَكُونُ</strong></p>



<p><strong>“</strong><strong>있어라! </strong><strong>그러면 </strong><strong>그것이 </strong><strong>있느니라.”8</strong></p>



<p>라는 명령으로 기록하고 배치하며, 군대들을 만드신 영광스러우신 분께서 부대와 같은 신체를 규율로 서로 알게 된 핵심적인 분자들과 핵심적인 부분들을 “어떻게 단 한번의 소리인 싸이하(Sayha)로 모이게 할 수 있겠는가?”라고 말할 수 있을까?</p>



<p>게다가 세상의 모든 시대와 각 세대에서, 이 봄의 부활과 비슷하게, 낮과 밤의 변화에서, 텅 빈 하늘에 구름을 만들고 없애는 것 등에서 부활의 흔적과 예시와 표시가 될 수많은 디자인을 만드시는 것을 당신은 눈으로 직접 보고 있다. 만일 당신이 천 년 전에 있다고 상상한 후 과거와 미래 시간의 두 날개를 서로 비교한다면, 각 세기와 날들만큼 수많은 부활의 비유와 심판의 날의 표시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수많은 비유와 표시를 목격했음에도 불구하고 신체의 부활을 비합리적이라 생각하며, 받아들이지 않고 부정한다면 그것이 얼마나 미친 짓인지 당신도 알 수 있을 것이다.</p>



<p>보아라! 위대하신 칙령이 우리가 지금까지 언급했던 진리에 대해 무엇이라 하는지.</p>



<p><strong>فَٱنظُرْ إِلَىٰ ءَاثَٰرِ رَحْمَتِ ٱللَّهِ كَيْفَ يُحْىِ ٱلْأَرْضَ بَعْدَ مَوْتِهَا إِنَّ ذَٰلِكَ لَمُحْىِ ٱلْمَوْتَىٰ وَهُوَ عَلَىٰ كُلِّ شَىْءٍ قَدِيرٌ</strong></p>



<p><strong>“</strong><strong>그러나 </strong><strong>하나님 </strong><strong>은혜의 </strong><strong>예증을 </strong><strong>보라. </strong><strong>그분께서 </strong><strong>죽은 </strong><strong>대지를 </strong><strong>어떻게 </strong><strong>생동케 </strong><strong>하느뇨.</strong></p>



<p><strong>그와 </strong><strong>마찬가지로 </strong><strong>그분은 </strong><strong>죽은 </strong><strong>자를 </strong><strong>살게 </strong><strong>하시니 </strong><strong>이는 </strong><strong>모든 </strong><strong>일에 </strong><strong>전지전능하시기 </strong><strong>때문이라”9</strong></p>



<p>요약: 부활을 불가능하게 할 그 어떤 것도 없다. 그것의 타당한 이유는 바로 모든 것에 있다. 그렇다. 경이로운 이 거대한 지구를 그냥 단순한 동물처럼 죽이고 살리시며, 인간과 동물에게 이 지구를 기분 좋은 요람과 좋은 배로 만드시며, 태양을 이 게스트하우스에서 빛을 제공하고 따뜻하게 하는 전등으로 만드시며, 행성들을 천사들의 탈것으로 만드신 분께서 (이처럼 웅장하고 지속적인 그분의 양육하심과 이처럼 위대하시고 모든 것을 포함하는 그분의 통치하심이) 결코 이 일시적이며, 비영구적이며, 불안정하며, 하찮으며, 변화하며, 영원하지 않으며, 결점이 있으며, 결함이 있는 이 세상에 머물게 하거나 제한되게 하지 않으실 것이다.</p>



<p>즉 그분에게 맞는 지속적이며 고정되고 사라지지 않는 웅장한 다른 왕국이 있을 것이다. 다른 영원한 그분의 나라가 있을 것이다. 그것을 위해 우리를 일하게 하시며 그곳으로 초대하신다. 그리고 그곳으로 옮길 것이라는 것을 겉으로 보이는 것이 아닌 진리를 보며, 하나님 바로 앞에 있는 것처럼 가까운 명예로운 빛나는 영혼을 가진 모든 예언자, 빛나는 마음의 최고봉인 모든 성인, 빛나는 이성의 모든 현자가 증언한다. 그리고 우리에게 그분께서 보상과 벌을 준비하셨음을 반복적으로 확고하게 약속하시고 단호하게 경고하고 있음을 한목소리로 알리며 전하고 있다.</p>



<p>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은 완전히 치욕이며 굴욕을 당하는 일이다. 이는 그 어떤 경우에도 그분의 성스러움과 영광스러움에 어울리지 않는다.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은 용서하는 것이거나 아니면 권능의 부족으로부터 인한다. 더군다나 불신은 절대적인 살인이며10 결코 용서될 수 없다. 전지전능하신 분은 빈곤함과는 거리가 멀며 고귀하신 분이시다.</p>



<p>이 소식을 전하며 증언하는 사람들은 그들이 생각하는 방향과 기질이나 의견들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완전히 만장 일치된 동의로 이 내용의 기본에 대해 완전히 일치된 이견을 보인다. 또한 다수의 믿음직한 사람들이 서로에게 전달해 준 정확한 소식만큼 강력하고 신뢰할 만하게 이 소식을 전달하고 있다. 그들 각각은 인류의 별이며 국민들의 눈이고 국가의 존경의 대상이며 이 내용에 대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전문가이며 권위자이다. 더군다나 예술과 과학 두 분야를 대표하는 두 명의 전문가의 의견은 비전문가인 수천 명의 의견보다 더 선호되며, 어떤 소식을 증명하는 두 명의 의견은 그것을 부정하는 수천 명의 의견보다 더 선호된다. 예를 들면 라마단의 초승달11이 떴음을 보고 라마단의 시작을 알리는 두 명의 증언은 그것을 부정하는 수천 명의 주장을 완전하게 무효화시킨다.</p>



<p>결론: 이 세상에서 이보다 더 올바른 소식, 더 견고한 주장, 더 분명한 진리는 없다. 즉 의심할 여지 없이 이 세상은 경작지이며 부활은 추수하는 장소이며 타작하는 마당인 것이다. 또한 천국과 지옥은 추수한 곡물을 저장하는 장소인 것이다.</p>



<figure class="wp-block-image size-large"><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width="1024" height="682" src="http://koreanur.com/wp-content/uploads/2024/09/sunset-5990540_1280-1024x682.jpg" alt="" class="wp-image-53" srcset="https://koreanur.com/wp-content/uploads/2024/09/sunset-5990540_1280-1024x682.jpg 1024w, https://koreanur.com/wp-content/uploads/2024/09/sunset-5990540_1280-300x200.jpg 300w, https://koreanur.com/wp-content/uploads/2024/09/sunset-5990540_1280-768x512.jpg 768w, https://koreanur.com/wp-content/uploads/2024/09/sunset-5990540_1280-576x384.jpg 576w, https://koreanur.com/wp-content/uploads/2024/09/sunset-5990540_1280-1152x768.jpg 1152w, https://koreanur.com/wp-content/uploads/2024/09/sunset-5990540_1280-800x533.jpg 800w, https://koreanur.com/wp-content/uploads/2024/09/sunset-5990540_1280-165x109.jpg 165w, https://koreanur.com/wp-content/uploads/2024/09/sunset-5990540_1280.jpg 1280w" sizes="auto, (max-width: 1024px) 100vw, 1024px" /></figure>



<p>1 꾸란 30장(로움) 50절</p>



<p>2 원본에는 총 열 두가지 진리로 구성되어있지만 이곳에서는 그 중 아홉 번째 진리만 언급함</p>



<p>3 최고의 재판: 죽음 후 내세에서 하나님의 앞에 열리게 될 큰 재판</p>



<p>4 싸이하(Sayha): 마치 촛불을 후- 하고 불어 끌 때 나는 소리처럼 이 땅에 존재한 모든 것을 사라지게 하실 때 그리고 부활시키실 때 나는 소리</p>



<p>5 Nakkâş-ı Ezelî: 시작도 없이 영원하신 수(繡) 놓으시는 분</p>



<p>6 이 부분은 직역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어서 의역함</p>



<p>7 Zat-ı Hakim-i Hafız: 현명하시고 보존하시는 분</p>



<p>8 꾸란 36장(야신) 82절</p>



<p>9 꾸란 30장(로움) 50절</p>



<p>10 그렇다. 불신이란 피조물들의 가치를 떨어뜨리고 무의미하다고 비판하며 모든 삼라만상에 대해 희롱하는 것과 같다. 또한 피조물의 거울들에 비치는 하나님의 아름다운 이름들의 징후를 부정하는 것이므로 모든 하나님의 아름다운 이름들에 대해 희롱하는 것과 같다. 또한 피조물들이 하나님의 유일하심을 증언하는 것을 부정하는 것이며 반박하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의 창조 시 가지고 있는 모든 특징을 파괴하는 것이므로 개선될 수 있거나 좋은 것이라 받아들이는 것에 전혀 합당하지 않다. 또한 불신은 완전한 학대로써 모든 피조물과 모든 하나님의 아름다운 이름들의 권리에 대해 침범하는 것이다. 이렇듯 이 권리를 보호하는 것과 불신자의 자아가 선행할 능력이 없어졌기 때문에 불신자를 용서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필요로 하다 하겠다. “실로 하나님을 불신함이 가장 큰 죄악이니라” (꾸란 31장(루끄만) 13절)의 꾸란 구절에서 이 의미를 표현한다. 11 라마단의 초승달: 이슬람에서 라마단의 시작을 초승달을 보고 결정한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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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비스밀라의 의미</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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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CDATA[admin]]></dc:creator>
		<pubDate>Thu, 26 Sep 2024 10:59:17 +0000</pubDate>
				<category><![CDATA[AFTERLIFE]]></category>
		<category><![CDATA[Bediuzzaman Said Nursi]]></category>
		<category><![CDATA[Belief and Unbelief]]></category>
		<category><![CDATA[Risale-i Nur]]></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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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첫 번째 말씀 비스밀라(Bismillah)[1]는 모든 좋은 일의 시작이다. 따라서 우리도 비스밀라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하겠다. 알게나 나의 자아여! 이 축복받은 말은 이슬람의 표시이며 모든 존재가 몸짓으로 끊임없이 하는 기도이다. 비스밀라가 얼마나 크고 강하며 고갈되지 않는 힘인지, 또한 얼마나 끝나지 않는 축복인지 알고 싶다면 다음의 비유적인 이야기를 들어보게나. 아라비아의 사막에서 여행하려고 하는 [&#8230;]]]></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
<p><strong>첫 </strong><strong>번째 </strong><strong>말씀</strong></p>



<p>비스밀라(Bismillah)<a href="https://manage.wix.com/dashboard/239aeec4-7d77-4b1a-b40e-a240d7241feb/blog/6071a477618268002b25567f/edit#_ftn1" target="_blank" rel="noreferrer noopener">[1]</a>는 모든 좋은 일의 시작이다. 따라서 우리도 비스밀라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하겠다. 알게나 나의 자아여! 이 축복받은 말은 이슬람의 표시이며 모든 존재가 몸짓으로 끊임없이 하는 기도이다.</p>



<p>비스밀라가 얼마나 크고 강하며 고갈되지 않는 힘인지, 또한 얼마나 끝나지 않는 축복인지 알고 싶다면 다음의 비유적인 이야기를 들어보게나.</p>



<p>아라비아의 사막에서 여행하려고 하는 사람은 어떤 부족장의 이름으로 움직여야 하며 그의 보호를 받아야지만 노상강도의 피해로부터 보호를 받을 수 있고, 필요한 것들을 확보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혼자서 수없이 많은 적과 필요한 것들로 인해 매우 고생할 것이다.</p>



<p>이처럼 사막으로 여행을 떠난 두 사람이 있었다. 그들 중 한 명은 겸손하였으나 다른 한 명은 오만하였다. 겸손한 사람은 부족장의 이름으로 움직였고 오만한 사람은 그렇지 않았다. 부족장의 이름으로 움직이는 사람은 어느 곳이나 안전하게 돌아다녔고 가다가 노상강도를 만나게 되면 “나는 부족장의 이름으로 돌아다닌다”라고 말했기 때문에 노상강도가 건드리지 못하고 가버렸을 뿐만 아니라 어떤 천막으로 들어가면 그 이름 덕분에 존중을 받기도 하였다. 반면에 다른 오만한 사람은 여행하는 동안 상상도 못할 고생을 하며, 항상 공포에 떨며 거지처럼 구걸하면서 돌아다녔다. 자신이 저자세가 되기도 하고 수치를 당하기도 하였다.</p>



<p>이처럼 오만한 나 자신이여! 당신은 바로 그 여행자이다. 이 세상은 하나의 사막이며 당신의 무능력과 빈곤은 무한하며 적들과 필요한 것은 끝이 없다. 그렇다면 이 사막의 ‘영원한 주인이신 하나님’과 ‘시작과 끝이 없는 지배자이신 하나님’의 이름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야 온 삼라만상에 구걸하지 않고 모든 사건 앞에 두려움으로 떨지 않으며 보호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p>



<p>그렇다. 이 표현은 그토록 축복받은 금고이며 당신의 끝이 없는 무능력과 빈곤이 끝이 없는 권능과 자비로 연결되어 ‘전능하고 자애로우신 하나님’의 앞에서 무능력과 빈곤을 가장 잘 받아들이는 중재자로 만든다. 그렇다. 이 표현으로 움직이는 사람은 이 사람과 같다. 군에 입대하여 나라의 이름으로 행동하며 누구든지 두려워하지 않는다. 모든 일을 ‘법의 이름으로’ 또는 ‘나라의 이름으로’라고 하며 실시하기 때문에 모든 것에 견딜 수 있다.</p>



<p>처음에 언급했듯이 존재하는 모든 것은 몸짓으로 ‘비스밀라’라고 한다고 하였는데 과연 맞을까?</p>



<p>그렇다. 만일 한 사람이 도시의 전 국민을 강제로 어느 곳으로 이동시켜서 일까지 시키는 것을 본다면 분명히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자신의 이름으로 또는 자신의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단지 군인이라서 국가의 이름으로 행동하는 것이다. 즉 말하자면 어떤 왕의 힘을 신뢰하는 것이다.</p>



<p>이와 마찬가지로 모든 것은 전능하신 창조주의 이름으로 행동한다. 지극히 작은 곡물들과 씨앗들은 그들의 머리 위에 큰 나무를 들고 산과 같은 짐을 들어 올린다. 즉 각각의 나무가 ‘비스밀라’라고 하며 자비의 금고인 과일로 자신의 손을 가득 채워 우리에게 선사한다.</p>



<p>각각의 텃밭은 ‘비스밀라’라고 하며 권능의 부엌에서 하나의 큰 냄비가 되고 그 냄비 안에 상당히 다양하고 맛있는 음식이 같이 끓여진다.</p>



<p>소, 낙타, 양, 염소 등 축복받은 동물들은 ‘비스밀라’라고 하며 자비로운 풍요로움으로부터 각각의 우유의 원천이 되어, 양식을 주시는 분의 이름으로 가장 사랑스럽고 깨끗하며 생명의 물과 같은 영양을 우리에게 바친다.</p>



<p>각각의 식물과 나무와 풀의 실크 같은 부드러운 뿌리는 ‘비스밀라’라고 하며 딱딱한 돌과 흙을 꿰뚫어 통과한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자비로우신 하나님의 이름으로”라고 하므로 모든 것이 그에게 복종한다.</p>



<p>그렇다. 공중에서 나뭇가지들이 가지를 치고 열매를 맺듯이 딱딱한 돌과 흙에서 뿌리들이 최대한 쉽게 퍼지는 것, 땅 밑에서 열매를 맺는 것, 강한 더위에도 불구하고 수개월 동안 연약한 녹색의 잎을 유지하는 것들은 자연주의자들의 입을 다물게 하며 그들의 눈앞에 바로 보여주며 말한다.</p>



<p>너희들이 가장 믿는 딱딱함과 더위조차 명령에 따라 행동하니, 그 실크처럼 부드러운 뿌리들은 모세의 기적의 지팡이<a href="https://manage.wix.com/dashboard/239aeec4-7d77-4b1a-b40e-a240d7241feb/blog/6071a477618268002b25567f/edit#_ftn2" target="_blank" rel="noreferrer noopener">[2]</a>처럼</p>



<p><strong>فَقُلْنَا ٱضْرِب بِّعَصَاكَ ٱلْحَجَرَ</strong></p>



<p>“<strong>우리는 </strong><strong>모세에게</strong></p>



<p><strong>네 </strong><strong>지팡이로 </strong><strong>그 </strong><strong>바위를 </strong><strong>때리라고 </strong><strong>하였다</strong>”<a href="https://manage.wix.com/dashboard/239aeec4-7d77-4b1a-b40e-a240d7241feb/blog/6071a477618268002b25567f/edit#_ftn3" target="_blank" rel="noreferrer noopener">[3]</a></p>



<p>라고 하는 명령에 따라 돌을 갈라지게 한다.</p>



<p>또한 담배종이 같은 얇고 허약한 잎은 아브라함의 장기들<a href="https://manage.wix.com/dashboard/239aeec4-7d77-4b1a-b40e-a240d7241feb/blog/6071a477618268002b25567f/edit#_ftn4" target="_blank" rel="noreferrer noopener">[4]</a>처럼 불을 내뿜는 더위를 향해</p>



<p><strong>يَا نَارُ كُونِي بَرْدًا وَسَلَامًا</strong></p>



<p><strong>“</strong><strong>하나님이 </strong><strong>명령하사 ‘</strong><strong>불아! </strong><strong>식어라.</strong></p>



<p><strong>그리고 </strong><strong>아브라함을 </strong><strong>안전케 </strong><strong>하라’</strong></p>



<p><strong>라고 </strong><strong>하였노라.”</strong><a href="https://manage.wix.com/dashboard/239aeec4-7d77-4b1a-b40e-a240d7241feb/blog/6071a477618268002b25567f/edit#_ftn5" target="_blank" rel="noreferrer noopener">[5]</a></p>



<p>라는 구절을 암송한다.</p>



<p>이처럼 모든 것이 정신적으로 ‘비스밀라’라고 하며,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은총을 우리에게 가져다준다면 우리도 ‘비스밀라’라고 해야 한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주어야 하며 하나님의 이름으로 받아야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이름으로 주지 않는 등한시하는 사람으로부터는 받지 말아야 한다.</p>



<p><strong>질문</strong>: 판매자인 사람들에게 어떤 가격을 주고 산다. 그렇다면 실제 소유주이신 하나님께서는 어떤 가격을 원하십니까?</p>



<p><strong>답변</strong>: 그렇다, 실제로 은혜를 주신 그분은 가치 있는 그 은혜나 물건에 대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세 가지이다. 하나는 <strong>기억하는 </strong><strong>것</strong>이며 하나는 <strong>감사하는 </strong><strong>것</strong>이며 또 다른 하나는 <strong>생각하는 </strong><strong>것</strong>이다.</p>



<p>시작할 때 ‘비스밀라’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을 기억하는 것이며 마지막에 ‘알함두릴라’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이며 중간에 이 가치 있는 놀라울 만한 예술품인 은총들이 ‘유일하고 아무것도 필요로 하지 않으신 하나님’의 권능의 기적 및 자비의 선물임을 생각하며 이해하는 것은 하나님을 생각하는 것이다.</p>



<p>어떤 왕의 가치 있는 선물을 당신에게 전해주는 불쌍한 사람의 발에 뽀뽀하며 그 선물의 주인을 모르는 것이 얼마나 바보 같은 짓이라면, 이렇게 겉으로 보이는 은혜를 주는 자들을 칭찬하고 고마워하며 실제로 그 은혜를 베푸신 분을 잊어버리는 것은 그보다 천 번 더 바보 같은 짓이다.</p>



<p>오 나의 자아여! 이렇게 어리석은 사람이 되고 싶지 않으면 하나님의 이름으로 주어라! 하나님의 이름으로 받아라! 하나님의 이름으로 행동해라!</p>



<figure class="wp-block-image size-full"><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width="569" height="383" src="http://koreanur.com/wp-content/uploads/2024/09/1_edited.jpg" alt="" class="wp-image-50" srcset="https://koreanur.com/wp-content/uploads/2024/09/1_edited.jpg 569w, https://koreanur.com/wp-content/uploads/2024/09/1_edited-300x202.jpg 300w" sizes="auto, (max-width: 569px) 100vw, 569px" /></figure>



<p><br><a href="https://manage.wix.com/dashboard/239aeec4-7d77-4b1a-b40e-a240d7241feb/blog/6071a477618268002b25567f/edit#_ftnref1" target="_blank" rel="noreferrer noopener">[1]</a> 비스밀라(Bismillah): 하나님의 이름으로<br><a href="https://manage.wix.com/dashboard/239aeec4-7d77-4b1a-b40e-a240d7241feb/blog/6071a477618268002b25567f/edit#_ftnref2" target="_blank" rel="noreferrer noopener">[2]</a> 모세의 기적의 지팡이: 예언자 모세(그분에게 평화가 깃들기를)가 바위를 때려 물을 나오게 한 기적의 지팡이<br><a href="https://manage.wix.com/dashboard/239aeec4-7d77-4b1a-b40e-a240d7241feb/blog/6071a477618268002b25567f/edit#_ftnref3" target="_blank" rel="noreferrer noopener">[3]</a> 꾸란 2장(바카라) 60절<br><a href="https://manage.wix.com/dashboard/239aeec4-7d77-4b1a-b40e-a240d7241feb/blog/6071a477618268002b25567f/edit#_ftnref4" target="_blank" rel="noreferrer noopener">[4]</a> 아브라함의 장기들: 불 안으로 던져졌음에도 불구하고 타지 않은 예언자 아브라함(그분에게 평화가 깃들기를)의 장기들<br><a href="https://manage.wix.com/dashboard/239aeec4-7d77-4b1a-b40e-a240d7241feb/blog/6071a477618268002b25567f/edit#_ftnref5" target="_blank" rel="noreferrer noopener">[5]</a> 꾸란 21장(안비야) 69절</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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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에언자 &#8220;욥&#8221; 의 질병</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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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CDATA[admin]]></dc:creator>
		<pubDate>Thu, 26 Sep 2024 10:58:34 +0000</pubDate>
				<category><![CDATA[Allah]]></category>
		<category><![CDATA[Bediuzzaman Said Nursi]]></category>
		<category><![CDATA[Belief and Unbelief]]></category>
		<category><![CDATA[QUR’AN]]></category>
		<category><![CDATA[Risale-i Nur]]></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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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두 번째 섬광 بِسْمِ اللّٰهِ الرَّحْمٰنِ الرَّحٖيمِ 자비로우시고 자애로우신 하나님의 이름으로 “욥을 상기하라 그는 주님께 간구하였노라. ‘재앙으로 제가 괴롭나이다. 당신은 가장 자비로우시고 자애로우시니 은혜를 베풀어 주옵소서’”1 인내의 영웅인 예언자 욥(그분에게 하나님의 평화가 깃들기를)의 이 애원함은 이미 경험한 것이며 또한 효과적이다. 우리도 하나님께 애원할 때 이 구절을 인용하며 “주님! 재앙으로 제가 [&#8230;]]]></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
<p>두 번째 섬광</p>



<p>بِسْمِ اللّٰهِ الرَّحْمٰنِ الرَّحٖيمِ</p>



<figure class="wp-block-image size-large"><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width="1024" height="683" src="http://koreanur.com/wp-content/uploads/2024/09/eyyupas-1024x683.jpg" alt="" class="wp-image-47" srcset="https://koreanur.com/wp-content/uploads/2024/09/eyyupas-1024x683.jpg 1024w, https://koreanur.com/wp-content/uploads/2024/09/eyyupas-300x200.jpg 300w, https://koreanur.com/wp-content/uploads/2024/09/eyyupas-768x512.jpg 768w, https://koreanur.com/wp-content/uploads/2024/09/eyyupas-1536x1024.jpg 1536w, https://koreanur.com/wp-content/uploads/2024/09/eyyupas-576x384.jpg 576w, https://koreanur.com/wp-content/uploads/2024/09/eyyupas-1152x768.jpg 1152w, https://koreanur.com/wp-content/uploads/2024/09/eyyupas-800x533.jpg 800w, https://koreanur.com/wp-content/uploads/2024/09/eyyupas-165x109.jpg 165w, https://koreanur.com/wp-content/uploads/2024/09/eyyupas.jpg 1920w" sizes="auto, (max-width: 1024px) 100vw, 1024px" /></figure>



<p>자비로우시고 자애로우신 하나님의 이름으로</p>



<p><strong>“</strong><strong>욥을 </strong><strong>상기하라 </strong><strong>그는 </strong><strong>주님께 </strong><strong>간구하였노라. ‘</strong><strong>재앙으로 </strong><strong>제가 </strong><strong>괴롭나이다.</strong></p>



<p><strong>당신은 </strong><strong>가장 </strong><strong>자비로우시고 </strong><strong>자애로우시니 </strong><strong>은혜를 </strong><strong>베풀어 </strong><strong>주옵소서’”1</strong></p>



<p>인내의 영웅인 예언자 욥(그분에게 하나님의 평화가 깃들기를)의 이 애원함은 이미 경험한 것이며 또한 효과적이다. 우리도 하나님께 애원할 때 이 구절을 인용하며</p>



<p><strong>“</strong><strong>주님! </strong><strong>재앙으로 </strong><strong>제가 </strong><strong>괴롭나이다. </strong><strong>당신은 </strong><strong>가장 </strong><strong>자비로우시고 </strong><strong>자애로우시니 </strong><strong>은혜를 </strong><strong>베풀어 </strong><strong>주옵소서”2</strong></p>



<p>라고 해야 한다.</p>



<p><strong>“</strong><strong>주님! </strong><strong>재앙으로 </strong><strong>제가 </strong><strong>괴롭나이다. </strong><strong>혀로 </strong><strong>당신을 </strong><strong>암송하는 </strong><strong>데,</strong></p>



<p><strong>심장으로 </strong><strong>당신을 </strong><strong>숭배하는 </strong><strong>데 </strong><strong>피해를 </strong><strong>받고 </strong><strong>있습니다”3</strong></p>



<p>라고 하며 간절하게 애원하였다. 전능하신 창조주께서는 이 순수하고 진실하며 전혀 다른 의도가 없는 하나님을 위한 그 간절한 애원을 상당히 놀라운 형식으로 받아들이셔서, 그는 완벽한 건강을 부여받아 모든 종류의 자비에 맞는 대상 이 되었다.</p>



<p>이 섬광에는 다섯 가지 관점이 있다. 4</p>



<p><strong>첫 </strong><strong>번째 </strong><strong>관점</strong></p>



<p>예언자 욥(그분에게 하나님의 평화가 깃들기를)의 겉으로 보이는 상처와 아픔에 상응하는 우리의 내면적인 정신과 마음의 아픔이 존재한다. 만일 우리의 겉을 안으로, 안을 겉으로 바꾸어 본다면, 예언자 욥(그분에게 하나님의 평화가 깃들기를)보다 더 심한 상처와 아픔이 존재한다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행하는 모든 죄, 우리의 머 리속에 들어오는 모든 의심은 정신과 마음에 상처들을 생기게 하기 때문이다. 예언자 욥(그분에게 하나님의 평화가 깃들기를)의 상처들은 단지 이 짧은 현세의 삶을 위협하였다. 하지만 우리의 정 신적인 상처는 무척 긴 영원한 삶을 위협한다. 그러므로 예언자 욥(그분에게 하나님의 평화가 깃들기를)보다 수천 배 더 간절한 기도가 필요하다. 그분의 상처에서 나온 기생충들이 심장과 혀에 파고든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들의 죄들로부터 생긴 상처들과 그 상처 들로부터 발생한 의심들과 사탄의 속삭임들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호하시길!) 신앙의 장소인 심장의 내부를 파고들 어 신앙에 상처를 입힌다. 신앙의 통역자인 혀의 정신적인 기쁨에 또한 파고들어 하나님을 기억하는 것을 혐오하게 만 들어 멀어지게 하며 그만두게 만든다. 그렇다. 죄는 심장을 파고들어 검게 만들며 신앙의 빛이 꺼질 때까지 딱딱하게 만든다. 각각의 모든 죄는 불신으로 이 끄는 길이 있다. 만일 그 죄로부터 하나님의 용서를 구하며 빨리 없애지 않으면, 기생충이 아니라 정신적인 뱀처럼 커져 심장을 갉아 물어버릴 것이다. 예를 들면, 수치스러운 죄를 남몰래 지은 사람이 만일 다른 사람이 그것을 알게 될까 봐 창피함을 느낀다면, 그때 천사 들과 영혼들의 존재함이 그에게 무척 부담을 느끼게 한다. 그래서 아주 조그마한 표시로 그들을 부정함을 원하게 한다. 또한, 지옥의 형벌을 받을 만한 큰 죄를 지은 사람은 지옥에 대한 경고를 들으면 들을수록 (용서를 구함으로써 피하지 않으면) 진심으로 지옥이 존재하지 않기를 원하며 아주 조그마한 표시나 의심이 지옥을 부정할 수 있게 용기를 부여하 게 한다. 또한, 의무 예배를 드리지 않으며 숭배의 의무를 실천하지 않는 사람은 아주 작은 의무를 소홀히 하게 되기 때문에 자 기 상사로부터 야단을 받고 마음이 아픈 것처럼, 영원한 과거와 미래의 왕의 반복적인 명령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의무행위들에 대한 자신의 게으름이 그에게 매우 괴로움을 느끼게 만든다. 그 괴로움으로 인해 마음속으로 ‘이러한 숭배 의무가 없었더라면!’하는 바람으로 하나님에 대한 적대감을 느끼게 되며 하나님을 부정하는 바람이 생 기게 된다. 만일 하나님의 존재하심에 대해 어떠한 의심이라도 그의 마음속에 들어오게 된다면, 완전히 확실한 증거처럼 그에게 다가오게 되어, 소멸하게 만드는 큰 길이 그에게 열리게 된다. 그 불행한 사람은 숭배의 의무로 인한 아주 조그마한 부 담 대신 그 부정으로 인해 생기는 그 조그마한 부담보다 수백만 배 더 심한 공포스러운 정신적인 부담을 당하게 된다는 사실을 모른다. 즉 모기에게 물리는 것을 피하다가 뱀에게 물리는 꼴이 되는 셈이다. 이와 같이 다른 것들도 위의 세 가지 예들과 비교하면,</p>



<p><strong>“</strong><strong>그들의 </strong><strong>마음들은 </strong><strong>죄악으로 </strong><strong>물들어 </strong><strong>있노라”5</strong></p>



<p>라는 비밀을 알게 될 것이다.</p>



<p><strong>두 </strong><strong>번째 </strong><strong>관점</strong></p>



<p>리살레이누르 26 번째 말씀에서 운명의 비밀에 관해 설명했듯이 고난과 아픔들에 대한 세 가지 측면에서 사람들은 불 평할 권리가 없다.</p>



<p><strong>첫 </strong><strong>번째 </strong><strong>측면: </strong>전능하신 창조주께서는 사람에게 입혀주신 신체라는 옷으로 그분의 예술을 보여주고 계신다. 인간을 모델로 하여, 그 신체라는 옷을 자르고, 다듬고, 바꾸고, 고치시며 다양하고 아름다운 이름들의 징후를 보여주신다. ‘치 료하시는 분(Şafi)’이라는 이름은 아픔을 필요로 하는 것처럼, ‘일용할 양식을 주시는 분(Rezzak)’이라는 이름 또 한 배고픔을 필요로 한다.</p>



<p><strong>“</strong><strong>재산의 </strong><strong>주인은 </strong><strong>자신의 </strong><strong>재산에 </strong><strong>대해 </strong><strong>원하시는 </strong><strong>대로 </strong><strong>사용하실 </strong><strong>수 </strong><strong>있습니다.”6</strong></p>



<p><strong>두 </strong><strong>번째 </strong><strong>측면</strong>: 삶은 고난들과 아픔들로 인해 정제되며, 완성되며, 강해지며, 발전되며, 결실을 맺으며, 완벽해지며, 자 신의 목적을 실현하게 된다. 편한 소파에 앉아 있는 단조로운 삶은 완전히 좋은 것인 “존재함”보다 완전히 나쁜 것인 “없음”에 가까우며 그 방향으로 가게 된다.</p>



<p><strong>세 </strong><strong>번째 </strong><strong>측면:</strong> 이 세상의 영역은 시험의 장이자 근무하는 곳이며 즐거움, 보상, 보수를 받는 장소가 아니다. 이 세상이 근무하는 곳이며 숭배의 장소라면 질병들과 고난들은 (신앙에 영향을 미치지 않거나, 인내한다는 조건 하에) 근무와 숭 배의 의미에 적합하게 되며 강화되며, 이때의 매시간은 하루의 경배로 간주되므로 불평하지 말고 감사해야 한다. 그렇다. 경배는 두 가지 부분으로 나뉜다. 하나는 긍정적인 부분이며, 다른 하나는 부정적인 부분이다. 긍정적인 부분 은 잘 알려진 것7이다. 부정적인 부분은 질병이나 고난으로 고통받는 자기 자신의 무능력과 빈곤을 느끼며 자애로운 주 님께 피난하면서 그분에게 향하며 그분을 생각하고 그분에게 애원하며 순수한 숭배를 행하는 것이다. 이 숭배에는 과시 적인 행동이 들어갈 수 없으며 순수하다. 만일 인내하며 고난에 대한 보상을 생각하고 감사한다면, 그 순간 한 시간은 하 루의 경배로 간주되어 이 짧은 삶이 긴 삶으로 바뀌게 된다. 게다가 어떤 경우에는 일 분이 하루의 경배로 간주되기도 한 다. 어느 날 나의 내세의 친구인 무하지르 하프즈 아흐멧(Muhajir Hafız Ahmed)의 매우 심한 병에 대해 무척 걱정하고 있을 때, 나의 마음에 경고를 보내어 주셨다. “그를 축하하게! 각각의 일 분은 하루의 경배로 간주된다네.” 그렇지 않 더라도 원래 그는 인내하며 감사하며 지내고 있었다.</p>



<p>1 꾸란 21 장(안비야) 83 절</p>



<p>2 꾸란 21 장(안비야) 83 절</p>



<p>3 하디스 부하르가 전함, Tevhid, 35</p>



<p>4 원본에는 총 다섯 가지 관점으로 구성되어있지만 이곳에서는 그 중 두 번째 관점까지만 언급함</p>



<p>5 꾸란 83 장(무따피핀) 14 절</p>



<p>6 (참고) 꾸란 3 장(이므란) 26~27 절</p>



<p>7 예배, 단식, 회사, 두아 등</p>



<p></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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