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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QUR’AN &#8211; Koreanur</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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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QUR’AN &#8211; Koreanur</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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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꾸란에서의 각의 장은 “비스밀라”로 시작합니다. 또한 모든 무슬림은 무슨 일을 할 때 먼저 “비스밀라”라고 하면서 시작합니다. 그렇다면 “비스밀라” 는 무슨 의미입니까?</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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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CDATA[admin]]></dc:creator>
		<pubDate>Thu, 26 Sep 2024 11:04:17 +0000</pubDate>
				<category><![CDATA[QUR’AN]]></category>
		<category><![CDATA[Risale-i Nur Collection]]></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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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비스밀라(Bismillah)는 모든 좋은 일의 시작입니다. 이 축복받은 말은 이슬람의 표시이며, 모든 존재가 몸짓으로 끊임없이 하는 기도입니다. 예를 들면 아라비아의 사막에서 여행하려고 하는 사람은 어떤 부족장의 이름으로 움직여야 하며, 그의 보호를 받아야지만 노상강도의 피해로부터 보호를 받을 수 있고 필요한 것들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혼자서 수없이 많은 적과 필요한 것들로 [&#8230;]]]></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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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비스밀라(Bismillah)는 모든 좋은 일의 시작입니다. 이 축복받은 말은 이슬람의 표시이며, 모든 존재가 몸짓으로 끊임없이 하는 기도입니다.</p>



<p>예를 들면 아라비아의 사막에서 여행하려고 하는 사람은 어떤 부족장의 이름으로 움직여야 하며, 그의 보호를 받아야지만 노상강도의 피해로부터 보호를 받을 수 있고 필요한 것들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혼자서 수없이 많은 적과 필요한 것들로 인해 매우 고생할 것입니다.</p>



<p>이처럼 사막으로 여행을 떠난 두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들 중 한 명은 겸손하였으나 다른 한 명은 오만하였습니다. 겸손한 사람은 부족장의 이름으로 움직였고 오만한 사람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부족장의 이름으로 움직이는 사람은 어느 곳이나 안전하게 돌아다녔고 가다가 노상강도를 만나게 되면 “나는 부족장의 이름으로 돌아다닌다”라고 말했기 때문에 노상강도가 건드리지 못하고 가버렸을 뿐만 아니라 어떤 천막으로 들어가면 그 이름 덕분에 존중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반면에 다른 오만한 사람은 여행하는 동안 상상도 못 할 고생을 하며, 항상 공포에 떨며 거지처럼 구걸하면서 돌아다녔습니다. 모멸과 수치를 당하기도 하였습니다.</p>



<p>이처럼 오만한 나 자신이여! 당신은 바로 그 여행자입니다. 이 세상은 하나의 사막이며, 당신의 무능력과 빈곤은 무한하며 적과 필요한 것들은 끝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 사막의 ‘영원한 주인이신 하나님’과 ‘시작과 끝이 없는 지배자이신 하나님’의 이름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래야 온 삼라만상에 구걸하지 않고 모든 사건 앞에 두려움으로 떨지 않으며 보호를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p>



<p>그렇습니다. 이 표현은 그토록 축복받은 금고이며 당신의 끝이 없는 무능력과 빈곤이 끝이 없는 권능과 자비로 연결되어 ‘전능하고 자애로우신 분’의 앞에서 무능력과 빈곤을 가장 잘 받아들이는 중재자로 만듭니다. 그렇습니다. 이 표현으로 움직이는 사람은 이 사람과 같습니다. 군에 입대하여 나라의 이름으로 행동하며 누구든지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모든 일을 ‘법의 이름으로’ 또는 ‘나라의 이름으로’라고 하며 실시하기 때문에 모든 것에 견딜 수 있습니다.</p>



<p>(창조주를 찾는 것 &#8211; 첫 번째 말씀 중)</p>



<p>(Risale-i Nur Collection &#8211; Word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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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라마단의 의미 3</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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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26 Sep 2024 11:03:12 +0000</pubDate>
				<category><![CDATA[Allah]]></category>
		<category><![CDATA[QUR’AN]]></category>
		<category><![CDATA[Risale-i Nur]]></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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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일곱 번째 관점 라마단 단식의 현세는 내세를 위한 경작과 교역을 위해 온 사람들의 이득을 얻는 장소라는 측면에서의 많은 지혜들 중 한 가지 지혜는 다음과 같습니다. 라마단에 선행에 대한 보상은 천배로 증가합니다. 보통때 지혜로운 꾸란-하디스와 함께 -의 각 글자 하나는 열배의 보상이 있으며 열배의 선행을 한 것과 같으며 열개의 천국의 과일을 [&#8230;]]]></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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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일곱 번째 관점</p>



<figure class="wp-block-image size-full"><img fetchpriority="high" decoding="async" width="800" height="600" src="http://koreanur.com/wp-content/uploads/2024/09/ramadan.webp" alt="" class="wp-image-65" srcset="https://koreanur.com/wp-content/uploads/2024/09/ramadan.webp 800w, https://koreanur.com/wp-content/uploads/2024/09/ramadan-300x225.webp 300w, https://koreanur.com/wp-content/uploads/2024/09/ramadan-768x576.webp 768w" sizes="(max-width: 800px) 100vw, 800px" /></figure>



<p>라마단 단식의 <strong>현세는 </strong><strong>내세를 </strong><strong>위한 </strong><strong>경작과 </strong><strong>교역을 </strong><strong>위해 </strong><strong>온 </strong><strong>사람들의 </strong><strong>이득을 </strong><strong>얻는 </strong><strong>장소라는 </strong><strong>측면</strong>에서의 많은 지혜들 중 한 가지 지혜는 다음과 같습니다.</p>



<p>라마단에 선행에 대한 보상은 천배로 증가합니다. 보통때 지혜로운 꾸란-하디스와 함께 -의 각 글자 하나는 열배의 보상이 있으며 열배의 선행을 한 것과 같으며 열개의 천국의 과일을 가져옵니다. 하지만 라마단에는 각각의 글자는 열배가 아니라 천배, Âyetü&#8217;l-Kürsî <a href="https://manage.wix.com/dashboard/239aeec4-7d77-4b1a-b40e-a240d7241feb/blog/create-post#_ftn1" target="_blank" rel="noreferrer noopener">[1]</a>같은 구절은 각각의 글자 하나가 수천배, 라마단의주마(금요일)의 날에는 더욱 더 증가합니다. 게다가 축복받은 밤(라마단 권능의 밤)에는 삼천배의 선행을 한 것과 같이 됩니다.</p>



<p>그렇습니다. 각각의 글자가 삼천개의 영원한 과일들을 주는 이 지혜로운 꾸란은 이처럼 빛나는 천국의 씨앗과 같이 되어 수백만배 이득을 얻게 합니다.</p>



<p>이처럼 이리와서 그 성스럽고, 영원하며, 이득이 있는 교역을 보고 구경하고 생각하십시요! 그 글자들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자들이 얼마나 큰 손실을 입는지 아십시요!</p>



<p>이처럼 라마단은 내세를 위한 교역을 위해 꽤나 이득적인 박람회이며 시장입니다. 또한 내세의 수익을 위한 무척 중요한 장소입니다. 또한 선행을 키우기 위해 봄에 내리는 비와 같습니다. ‘주의 왕국’에 대해 인간들이 숭배의 퍼레이드를 행하는 가장 반짝이며, 성스러운 명절과 같습니다. 그럼으로 자아의 등한시함(gaflet)으로 인해 먹고 마시는 것과 같은 동물적인 욕구들과 이득이 없으며 오로지 욕구에 따라 탐닉하는 것을 하지 않기 위해서 단식을 해야합니다. 마치 일시적인 동물성을 뛰어넘어 천사와 같은 상태로 되며 또는 내세를 위한 교역을 위해 현세의 필요한 것들을 일시적으로 그만두는 것과 같이 됩니다. 그로 인해 내세의 인간(uhrevî bir adam)과 물질적으로 보이는 영혼의 형태로 변하며 단식을 통해 ‘samediyet<a href="https://manage.wix.com/dashboard/239aeec4-7d77-4b1a-b40e-a240d7241feb/blog/create-post#_ftn2" target="_blank" rel="noreferrer noopener">[2]</a>’ 의 한가지의 거울이 되게 됩니다.</p>



<p>그렇습니다. 라마단은 이 일시적인 세상에서 일시적인 생애와 짧은 이 삶에서 영원한 생애와 긴 영원한 삶을 포함하며 얻게 합니다. 그렇습니다. 단 한번의 라마단은 80년 생애의 과일을 얻게 할 수 있으며, 권능의 밤(Leyle-i Kadir)<a href="https://manage.wix.com/dashboard/239aeec4-7d77-4b1a-b40e-a240d7241feb/blog/create-post#_ftn3" target="_blank" rel="noreferrer noopener">[3]</a> 은 천 개월보다 더 좋다는 것에 대해 꾸란은 확실한 증거입니다.</p>



<p>그렇습니다. 예를 들면 왕은 왕국의 통치 기간 중이나 또는 매년 또는 왕좌에 오르거나 빛나는 그의 왕권을 보여주는 특별한 날들을 축제로 만듭니다. 그날에는 일반적인 법의 범위 내에서가 아니라, 특별한 그분의 호의와 perdesiz huzuruna, 특별한 담화와 특별한 활동으로, lâyık(받을만한)하며 충실한 국민들에게 그분이 직접 특별한 관심을 주게 됩니다.</p>



<p>이렇듯 ‘과거와 미래의 영원하신 왕’인 8만가지 세상의 ‘영광스러운 군주’는 &#8211; 그 8만가지 세상을 돌보시며 관심을 주시는 분 -명예로운 칙령인 꾸란의 지혜를 라마단달에 계시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당연히 그 라마단은 신의 축제이며 전능하신 창조주의 전시회이며 영혼들의 모임과 같은 것은 지혜의 필연적인 결과입니다. 라마단이 축제라면 당연히 기본적인 동물적 행동들로부터 사람들을 끄집어 내기 위해서 단식을 명령할 것입니다.</p>



<p>그리고 가장 완벽한 단식은 위장같은 모든 장기들과 더불어 눈, 귀, 마음, 상상, 생각 등과 같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감각들 또한 단식을 하는 것입니다. 즉 하람들과 쓸데 없는 것들로 부터 피하는 것은 그들 각각이 특별한 숭배를 하도록 격려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혀를 거짓말, 뒷담화, 외설적인 말들을 하는 것으로 부터 벗어나 단식을 하게 하며 그 대신 그 혀를 꾸란을 읽고, 암송하며, tesbih<a href="https://manage.wix.com/dashboard/239aeec4-7d77-4b1a-b40e-a240d7241feb/blog/create-post#_ftn4" target="_blank" rel="noreferrer noopener">[4]</a> 와 salâvat <a href="https://manage.wix.com/dashboard/239aeec4-7d77-4b1a-b40e-a240d7241feb/blog/create-post#_ftn5" target="_blank" rel="noreferrer noopener">[5]</a>와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는 것과 같은것 것들로 바쁘게 하는 것… 또한 눈을 nâmahrem<a href="https://manage.wix.com/dashboard/239aeec4-7d77-4b1a-b40e-a240d7241feb/blog/create-post#_ftn6" target="_blank" rel="noreferrer noopener">[6]</a>를 보지 않고, 귀를 나쁜 것들을 듣는 것들로 피하며, 그 대신에 눈을 교훈에, 귀를 올바른 말과 꾸란을 듣는 것에 쓰는 것처럼 다른 감각들 또한 단식을 하는 것입니다. 사실상 위가 가장 큰 공장임으로 단식을 통해 그에게 휴업을 하게 한다면 다른 작은 기관들은 쉽게 그를 따르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p>



<p>리살레이누르 전집 중 “라마단의 의미”</p>



<p><br><a href="https://manage.wix.com/dashboard/239aeec4-7d77-4b1a-b40e-a240d7241feb/blog/create-post#_ftnref1" target="_blank" rel="noreferrer noopener">[1]</a> Âyetü&#8217;l-Kürsî : 꾸란 바카라장 2장 255절<br><a href="https://manage.wix.com/dashboard/239aeec4-7d77-4b1a-b40e-a240d7241feb/blog/create-post#_ftnref2" target="_blank" rel="noreferrer noopener">[2]</a> Samediyet (사마드): 하나님의 속성들 중 하나로 ‘스스로 자족하시는 분’이란 뜻이다. 인간을 비롯한 세상의 창조물 모두는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창조주께 의지하고 도움을 간구드리는 존재이지만 하나님은 ‘필요를 초월하신 분, 완전하고 영원하신 절대자’이시다. 모든 피조물은 그분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만 그분은 아무것도 필요로 하지 않는 분이시다.<br><a href="https://manage.wix.com/dashboard/239aeec4-7d77-4b1a-b40e-a240d7241feb/blog/create-post#_ftnref3" target="_blank" rel="noreferrer noopener">[3]</a> 권능의 밤(Leyle-i Kadir) : 축복의 밤이라고도 불림. 이 밤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강하신 신의 권능을 보여주는 밤입니다. (꾸란 권능의 밤의 장 참조 97장)<br><a href="https://manage.wix.com/dashboard/239aeec4-7d77-4b1a-b40e-a240d7241feb/blog/create-post#_ftnref4" target="_blank" rel="noreferrer noopener">[4]</a> Tesbih (타스비 흐) : 하나님을 염원하는 행위로써 수브하날라. 알함두릴라, 알라후 아크바르, 라 일라하 일랄라<br><a href="https://manage.wix.com/dashboard/239aeec4-7d77-4b1a-b40e-a240d7241feb/blog/create-post#_ftnref5" target="_blank" rel="noreferrer noopener">[5]</a> Salâvat : asking for God’s blessings for the Prophet Muhammad (Upon whom be blessings and peace)<br><a href="https://manage.wix.com/dashboard/239aeec4-7d77-4b1a-b40e-a240d7241feb/blog/create-post#_ftnref6" target="_blank" rel="noreferrer noopener">[6]</a> 규정된 친척관계를 벗어난 이성</p>



<p></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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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라마단의 의미 2</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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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26 Sep 2024 11:02:17 +0000</pubDate>
				<category><![CDATA[Allah]]></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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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두 번째 관점 라마단의 단식을 전능하신 창조주의 은총들에 대해 감사하는 측면에서 보는 많은 지헤들 중 한가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번째 말씀[1]에서 말한 것처럼 어떤 왕의 부엌으로 부터 음식을 나르는 사람이 가져 온 음식에 대해서 가격이 필요합니다. 행상인에게 팁을 줌에도 불구하고 무척 가치 있는 그 은총들을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며 은총을 주시는 분을 [&#8230;]]]></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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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두 번째 관점</p>



<p>라마단의 단식을 <strong>전능하신 </strong><strong>창조주의 </strong><strong>은총들에 </strong><strong>대해 </strong><strong>감사하는 </strong><strong>측면</strong>에서 보는 많은 지헤들 중 한가지는 다음과 같습니다.</p>



<p>첫번째 말씀<a href="https://manage.wix.com/dashboard/239aeec4-7d77-4b1a-b40e-a240d7241feb/blog/create-post#_ftn1" target="_blank" rel="noreferrer noopener">[1]</a>에서 말한 것처럼 어떤 왕의 부엌으로 부터 음식을 나르는 사람이 가져 온 음식에 대해서 가격이 필요합니다. 행상인에게 팁을 줌에도 불구하고 무척 가치 있는 그 은총들을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며 은총을 주시는 분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은 완전히 바보와 같습니다. 이처럼 ‘전능하신 창조주’의 무한한 다양한 은총들을 인간들에게 지상에 펼쳐 놓으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그 은총들에 대한 가격으로 감사함을 원하십니다.</p>



<p>그 은총들의 겉으로 보이는 원인이나 소유자는 그 음식을 나르는 사람과 같습니다. 우리는 그 음식을 나르는 사람에게 가격을 지불하며 고마워합니다. 게다가 그에 걸맞지 않을 만큼 과도한 존경과 감사를 표합니다. 그렇다면 ‘은혜를 실제로 주시는 분’은 그 원인보다 끝이 없을 정도로 은총의 측면에서 감사를 받아 마땅합니다. 즉 그분에게 감사하는 것은 그 은총들이 직접 그분으로 부터 온 것임을 아는 것, 그 은총들의 가치를 확증하는 것 그리고 그 은총들들로 자신의 필요한 것을 느끼는 것입니다.</p>



<p>이처럼 라마단달의 금식은 진실되고 순수하며 높고 전반적인 감사의 열쇠입니다. 왜냐하면 다른 때, 단식이 필수적이지 않은 상황에서의 사람들의 대부분은 진짜 배고픔을 느끼지 못할때는 많은 은총들의 가치를 인식하지 못합니다. 배부른 사람들은 – 특히 부자라 하더라도- 마른 빵 한 조각안에 있는 은총의 정도를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이프타르시간에는 그 마른 빵이 신앙인에게는 큰 가치가 있는 신의 은총임을 미각이 증언합니다. 왕부터 가장 가난한 사람에 이르기까지 모두 라마단에 그 은총들의 가치들을 이해하면서 정신적인 감사에 이르게 합니다.</p>



<p>또한 평상시에 먹는 음식이 금지된다는 점에서 “그 은총들은 나의 것이 아니며, 나는 그것들을 먹고 마시는 것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즉 그말은 그것들은 다른 이의 소유이며 그분으로 부터 은총이 부여된 것입니다. 나는 그분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라고 하며 그 은총을 은총으로 알게 되며 정신적인 감사를 하게 됩니다. 즉 이렇게 하여 단식은 많은 점에서 본질적인 인간의 의무인 감사의 열쇠와 같이 됩니다.</p>



<p><br><a href="https://manage.wix.com/dashboard/239aeec4-7d77-4b1a-b40e-a240d7241feb/blog/create-post#_ftnref1" target="_blank" rel="noreferrer noopener">[1]</a> 리살레이누르 모음집중 “말씀들”중 “첫번째 말씀”</p>



<figure class="wp-block-image size-large"><img decoding="async" width="1024" height="683" src="http://koreanur.com/wp-content/uploads/2024/09/half-moon-g9eddb66f8_1920-1-1024x683.jpg" alt="" class="wp-image-62" srcset="https://koreanur.com/wp-content/uploads/2024/09/half-moon-g9eddb66f8_1920-1-1024x683.jpg 1024w, https://koreanur.com/wp-content/uploads/2024/09/half-moon-g9eddb66f8_1920-1-300x200.jpg 300w, https://koreanur.com/wp-content/uploads/2024/09/half-moon-g9eddb66f8_1920-1-768x512.jpg 768w, https://koreanur.com/wp-content/uploads/2024/09/half-moon-g9eddb66f8_1920-1-1536x1024.jpg 1536w, https://koreanur.com/wp-content/uploads/2024/09/half-moon-g9eddb66f8_1920-1-576x384.jpg 576w, https://koreanur.com/wp-content/uploads/2024/09/half-moon-g9eddb66f8_1920-1-1152x768.jpg 1152w, https://koreanur.com/wp-content/uploads/2024/09/half-moon-g9eddb66f8_1920-1-800x533.jpg 800w, https://koreanur.com/wp-content/uploads/2024/09/half-moon-g9eddb66f8_1920-1-165x109.jpg 165w, https://koreanur.com/wp-content/uploads/2024/09/half-moon-g9eddb66f8_1920-1.jpg 1920w" sizes="(max-width: 1024px) 100vw, 1024px" /></fig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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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라마단의 의미1</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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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26 Sep 2024 11:01:37 +0000</pubDate>
				<category><![CDATA[Allah]]></category>
		<category><![CDATA[QUR’AN]]></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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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بِسْمِ اللّٰهِ الرَّحْمٰنِ الرَّحٖيمِ 자비로우시고 자애로우신 하나님의 이름으로 شَهْرُ رَمَضَانَ الَّذٖٓى اُنْزِلَ فٖيهِ الْقُرْاٰنُ هُدًى لِلنَّاسِ وَ بَيِّنَاتٍ مِنَ الْهُدٰى وَ الْفُرْقَانِ “사람을 위한 복음으로 그리고 옳고 그름의 기준으로 라마단 달에 꾸란이 계시되었나니”[1] 첫 번째 관점 라마단달의 단식은 이슬람의 5가지 의무 중 한 가지이며 이슬람에서의 의무 중 하나입니다. 라마단달의 단식의 [&#8230;]]]></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
<p>بِسْمِ اللّٰهِ الرَّحْمٰنِ الرَّحٖيمِ</p>



<p><strong>자비로우시고 </strong><strong>자애로우신 </strong><strong>하나님의 </strong><strong>이름으로</strong></p>



<p>شَهْرُ رَمَضَانَ الَّذٖٓى اُنْزِلَ فٖيهِ الْقُرْاٰنُ هُدًى لِلنَّاسِ وَ بَيِّنَاتٍ مِنَ الْهُدٰى وَ الْفُرْقَانِ</p>



<p><strong>“</strong><strong>사람을 </strong><strong>위한 </strong><strong>복음으로 </strong><strong>그리고 </strong><strong>옳고 </strong><strong>그름의 </strong><strong>기준으로</strong></p>



<p><strong>라마단 </strong><strong>달에 </strong><strong>꾸란이 </strong><strong>계시되었나니”</strong><a href="https://manage.wix.com/dashboard/239aeec4-7d77-4b1a-b40e-a240d7241feb/blog/98fb6b54-8b4e-41ca-b39c-36e778ad925a/edit#_ftn1" target="_blank" rel="noreferrer noopener"><strong>[1]</strong></a></p>



<p><strong>첫 </strong><strong>번째 </strong><strong>관점</strong></p>



<p>라마단달의 단식은 이슬람의 5가지 의무 중 한 가지이며 이슬람에서의 의무 중 하나입니다. 라마단달의 단식의 많은 지혜는 전능하신 창조주의 양육하심, 인간의 사회생활, 개인적인 삶, 욕구의 훈련, 알라께서 주신 은총등에 대한 감사함에 대한 지혜들이 있습니다<strong>.</strong></p>



<p><strong>전능하신 </strong><strong>창조주의 </strong><strong>양육하심의 </strong><strong>측면</strong>에서 단식의 가장 많은 지혜들 중 한가지는 다음과 같습니다.</p>



<p>전능하신 창조주께서는 지상을 은총의 식탁의 모습으로 창조하시고 모든 은총의 종류들을 그 식탁에</p>



<p>مِنْ حَيْثُ لَا يَحْتَسِبُ</p>



<p>“그분은 생각지 아니했던 일용할 양식을 주시니라”<a href="https://manage.wix.com/dashboard/239aeec4-7d77-4b1a-b40e-a240d7241feb/blog/create-post#_ftn1" target="_blank" rel="noreferrer noopener">[2]</a></p>



<p>형식으로 차리는 것으로써 그분의 완전한 양육하심, 자비로우심, 자애로우심을 설명하십니다.</p>



<p>그러나 사람들은 무관심이라는 장막과 원인(인과관계)의 영역에서 그러한 것들을 설명한 진리를 확실하게 보지 못하고 때로는 잊어버립니다. 그러나 라마단은 신앙인들을 한번에 질서있는 군대와 같이 만듭니다. 즉 “영원한 과거의 왕” 의 연회에 초대되는 되는 것처럼 저녁쯤(이프타르시간)에 “어서 드세요!” 라는 명령을 기다리는 것과 같이 그로써 경배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그분의 인자하며 위대하고 종합적인 자비로우심에 대해 포괄적이며 높고 정돈된 경배로 답을 합니다. 이러한 높은 숭배와 명예로운 의무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들이 과연 사람이라는 이름에 어울릴수 있단 말입니까?</p>



<p>리살레이누르 전집 중 29번째 편지</p>



<p><a href="https://manage.wix.com/dashboard/239aeec4-7d77-4b1a-b40e-a240d7241feb/blog/98fb6b54-8b4e-41ca-b39c-36e778ad925a/edit#_ftnref1" target="_blank" rel="noreferrer noopener">[1]</a> 꾸란 65장 3절<br><a href="https://manage.wix.com/dashboard/239aeec4-7d77-4b1a-b40e-a240d7241feb/blog/create-post#_ftnref1" target="_blank" rel="noreferrer noopener">[2]</a> 꾸란 딸라끄장 65장:2절</p>



<figure class="wp-block-image size-large"><img decoding="async" width="1024" height="684" src="http://koreanur.com/wp-content/uploads/2024/09/ramadan--1024x684.jpg" alt="" class="wp-image-59" srcset="https://koreanur.com/wp-content/uploads/2024/09/ramadan--1024x684.jpg 1024w, https://koreanur.com/wp-content/uploads/2024/09/ramadan--300x200.jpg 300w, https://koreanur.com/wp-content/uploads/2024/09/ramadan--768x513.jpg 768w, https://koreanur.com/wp-content/uploads/2024/09/ramadan--1536x1026.jpg 1536w, https://koreanur.com/wp-content/uploads/2024/09/ramadan--576x384.jpg 576w, https://koreanur.com/wp-content/uploads/2024/09/ramadan--1152x768.jpg 1152w, https://koreanur.com/wp-content/uploads/2024/09/ramadan--800x534.jpg 800w, https://koreanur.com/wp-content/uploads/2024/09/ramadan--165x109.jpg 165w, https://koreanur.com/wp-content/uploads/2024/09/ramadan-.jpg 1920w" sizes="(max-width: 1024px) 100vw, 1024px" /></fig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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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에언자 &#8220;욥&#8221; 의 질병</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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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CDATA[admin]]></dc:creator>
		<pubDate>Thu, 26 Sep 2024 10:58:34 +0000</pubDate>
				<category><![CDATA[Allah]]></category>
		<category><![CDATA[Bediuzzaman Said Nursi]]></category>
		<category><![CDATA[Belief and Unbelief]]></category>
		<category><![CDATA[QUR’AN]]></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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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두 번째 섬광 بِسْمِ اللّٰهِ الرَّحْمٰنِ الرَّحٖيمِ 자비로우시고 자애로우신 하나님의 이름으로 “욥을 상기하라 그는 주님께 간구하였노라. ‘재앙으로 제가 괴롭나이다. 당신은 가장 자비로우시고 자애로우시니 은혜를 베풀어 주옵소서’”1 인내의 영웅인 예언자 욥(그분에게 하나님의 평화가 깃들기를)의 이 애원함은 이미 경험한 것이며 또한 효과적이다. 우리도 하나님께 애원할 때 이 구절을 인용하며 “주님! 재앙으로 제가 [&#8230;]]]></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
<p>두 번째 섬광</p>



<p>بِسْمِ اللّٰهِ الرَّحْمٰنِ الرَّحٖيمِ</p>



<figure class="wp-block-image size-large"><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width="1024" height="683" src="http://koreanur.com/wp-content/uploads/2024/09/eyyupas-1024x683.jpg" alt="" class="wp-image-47" srcset="https://koreanur.com/wp-content/uploads/2024/09/eyyupas-1024x683.jpg 1024w, https://koreanur.com/wp-content/uploads/2024/09/eyyupas-300x200.jpg 300w, https://koreanur.com/wp-content/uploads/2024/09/eyyupas-768x512.jpg 768w, https://koreanur.com/wp-content/uploads/2024/09/eyyupas-1536x1024.jpg 1536w, https://koreanur.com/wp-content/uploads/2024/09/eyyupas-576x384.jpg 576w, https://koreanur.com/wp-content/uploads/2024/09/eyyupas-1152x768.jpg 1152w, https://koreanur.com/wp-content/uploads/2024/09/eyyupas-800x533.jpg 800w, https://koreanur.com/wp-content/uploads/2024/09/eyyupas-165x109.jpg 165w, https://koreanur.com/wp-content/uploads/2024/09/eyyupas.jpg 1920w" sizes="auto, (max-width: 1024px) 100vw, 1024px" /></figure>



<p>자비로우시고 자애로우신 하나님의 이름으로</p>



<p><strong>“</strong><strong>욥을 </strong><strong>상기하라 </strong><strong>그는 </strong><strong>주님께 </strong><strong>간구하였노라. ‘</strong><strong>재앙으로 </strong><strong>제가 </strong><strong>괴롭나이다.</strong></p>



<p><strong>당신은 </strong><strong>가장 </strong><strong>자비로우시고 </strong><strong>자애로우시니 </strong><strong>은혜를 </strong><strong>베풀어 </strong><strong>주옵소서’”1</strong></p>



<p>인내의 영웅인 예언자 욥(그분에게 하나님의 평화가 깃들기를)의 이 애원함은 이미 경험한 것이며 또한 효과적이다. 우리도 하나님께 애원할 때 이 구절을 인용하며</p>



<p><strong>“</strong><strong>주님! </strong><strong>재앙으로 </strong><strong>제가 </strong><strong>괴롭나이다. </strong><strong>당신은 </strong><strong>가장 </strong><strong>자비로우시고 </strong><strong>자애로우시니 </strong><strong>은혜를 </strong><strong>베풀어 </strong><strong>주옵소서”2</strong></p>



<p>라고 해야 한다.</p>



<p><strong>“</strong><strong>주님! </strong><strong>재앙으로 </strong><strong>제가 </strong><strong>괴롭나이다. </strong><strong>혀로 </strong><strong>당신을 </strong><strong>암송하는 </strong><strong>데,</strong></p>



<p><strong>심장으로 </strong><strong>당신을 </strong><strong>숭배하는 </strong><strong>데 </strong><strong>피해를 </strong><strong>받고 </strong><strong>있습니다”3</strong></p>



<p>라고 하며 간절하게 애원하였다. 전능하신 창조주께서는 이 순수하고 진실하며 전혀 다른 의도가 없는 하나님을 위한 그 간절한 애원을 상당히 놀라운 형식으로 받아들이셔서, 그는 완벽한 건강을 부여받아 모든 종류의 자비에 맞는 대상 이 되었다.</p>



<p>이 섬광에는 다섯 가지 관점이 있다. 4</p>



<p><strong>첫 </strong><strong>번째 </strong><strong>관점</strong></p>



<p>예언자 욥(그분에게 하나님의 평화가 깃들기를)의 겉으로 보이는 상처와 아픔에 상응하는 우리의 내면적인 정신과 마음의 아픔이 존재한다. 만일 우리의 겉을 안으로, 안을 겉으로 바꾸어 본다면, 예언자 욥(그분에게 하나님의 평화가 깃들기를)보다 더 심한 상처와 아픔이 존재한다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행하는 모든 죄, 우리의 머 리속에 들어오는 모든 의심은 정신과 마음에 상처들을 생기게 하기 때문이다. 예언자 욥(그분에게 하나님의 평화가 깃들기를)의 상처들은 단지 이 짧은 현세의 삶을 위협하였다. 하지만 우리의 정 신적인 상처는 무척 긴 영원한 삶을 위협한다. 그러므로 예언자 욥(그분에게 하나님의 평화가 깃들기를)보다 수천 배 더 간절한 기도가 필요하다. 그분의 상처에서 나온 기생충들이 심장과 혀에 파고든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들의 죄들로부터 생긴 상처들과 그 상처 들로부터 발생한 의심들과 사탄의 속삭임들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호하시길!) 신앙의 장소인 심장의 내부를 파고들 어 신앙에 상처를 입힌다. 신앙의 통역자인 혀의 정신적인 기쁨에 또한 파고들어 하나님을 기억하는 것을 혐오하게 만 들어 멀어지게 하며 그만두게 만든다. 그렇다. 죄는 심장을 파고들어 검게 만들며 신앙의 빛이 꺼질 때까지 딱딱하게 만든다. 각각의 모든 죄는 불신으로 이 끄는 길이 있다. 만일 그 죄로부터 하나님의 용서를 구하며 빨리 없애지 않으면, 기생충이 아니라 정신적인 뱀처럼 커져 심장을 갉아 물어버릴 것이다. 예를 들면, 수치스러운 죄를 남몰래 지은 사람이 만일 다른 사람이 그것을 알게 될까 봐 창피함을 느낀다면, 그때 천사 들과 영혼들의 존재함이 그에게 무척 부담을 느끼게 한다. 그래서 아주 조그마한 표시로 그들을 부정함을 원하게 한다. 또한, 지옥의 형벌을 받을 만한 큰 죄를 지은 사람은 지옥에 대한 경고를 들으면 들을수록 (용서를 구함으로써 피하지 않으면) 진심으로 지옥이 존재하지 않기를 원하며 아주 조그마한 표시나 의심이 지옥을 부정할 수 있게 용기를 부여하 게 한다. 또한, 의무 예배를 드리지 않으며 숭배의 의무를 실천하지 않는 사람은 아주 작은 의무를 소홀히 하게 되기 때문에 자 기 상사로부터 야단을 받고 마음이 아픈 것처럼, 영원한 과거와 미래의 왕의 반복적인 명령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의무행위들에 대한 자신의 게으름이 그에게 매우 괴로움을 느끼게 만든다. 그 괴로움으로 인해 마음속으로 ‘이러한 숭배 의무가 없었더라면!’하는 바람으로 하나님에 대한 적대감을 느끼게 되며 하나님을 부정하는 바람이 생 기게 된다. 만일 하나님의 존재하심에 대해 어떠한 의심이라도 그의 마음속에 들어오게 된다면, 완전히 확실한 증거처럼 그에게 다가오게 되어, 소멸하게 만드는 큰 길이 그에게 열리게 된다. 그 불행한 사람은 숭배의 의무로 인한 아주 조그마한 부 담 대신 그 부정으로 인해 생기는 그 조그마한 부담보다 수백만 배 더 심한 공포스러운 정신적인 부담을 당하게 된다는 사실을 모른다. 즉 모기에게 물리는 것을 피하다가 뱀에게 물리는 꼴이 되는 셈이다. 이와 같이 다른 것들도 위의 세 가지 예들과 비교하면,</p>



<p><strong>“</strong><strong>그들의 </strong><strong>마음들은 </strong><strong>죄악으로 </strong><strong>물들어 </strong><strong>있노라”5</strong></p>



<p>라는 비밀을 알게 될 것이다.</p>



<p><strong>두 </strong><strong>번째 </strong><strong>관점</strong></p>



<p>리살레이누르 26 번째 말씀에서 운명의 비밀에 관해 설명했듯이 고난과 아픔들에 대한 세 가지 측면에서 사람들은 불 평할 권리가 없다.</p>



<p><strong>첫 </strong><strong>번째 </strong><strong>측면: </strong>전능하신 창조주께서는 사람에게 입혀주신 신체라는 옷으로 그분의 예술을 보여주고 계신다. 인간을 모델로 하여, 그 신체라는 옷을 자르고, 다듬고, 바꾸고, 고치시며 다양하고 아름다운 이름들의 징후를 보여주신다. ‘치 료하시는 분(Şafi)’이라는 이름은 아픔을 필요로 하는 것처럼, ‘일용할 양식을 주시는 분(Rezzak)’이라는 이름 또 한 배고픔을 필요로 한다.</p>



<p><strong>“</strong><strong>재산의 </strong><strong>주인은 </strong><strong>자신의 </strong><strong>재산에 </strong><strong>대해 </strong><strong>원하시는 </strong><strong>대로 </strong><strong>사용하실 </strong><strong>수 </strong><strong>있습니다.”6</strong></p>



<p><strong>두 </strong><strong>번째 </strong><strong>측면</strong>: 삶은 고난들과 아픔들로 인해 정제되며, 완성되며, 강해지며, 발전되며, 결실을 맺으며, 완벽해지며, 자 신의 목적을 실현하게 된다. 편한 소파에 앉아 있는 단조로운 삶은 완전히 좋은 것인 “존재함”보다 완전히 나쁜 것인 “없음”에 가까우며 그 방향으로 가게 된다.</p>



<p><strong>세 </strong><strong>번째 </strong><strong>측면:</strong> 이 세상의 영역은 시험의 장이자 근무하는 곳이며 즐거움, 보상, 보수를 받는 장소가 아니다. 이 세상이 근무하는 곳이며 숭배의 장소라면 질병들과 고난들은 (신앙에 영향을 미치지 않거나, 인내한다는 조건 하에) 근무와 숭 배의 의미에 적합하게 되며 강화되며, 이때의 매시간은 하루의 경배로 간주되므로 불평하지 말고 감사해야 한다. 그렇다. 경배는 두 가지 부분으로 나뉜다. 하나는 긍정적인 부분이며, 다른 하나는 부정적인 부분이다. 긍정적인 부분 은 잘 알려진 것7이다. 부정적인 부분은 질병이나 고난으로 고통받는 자기 자신의 무능력과 빈곤을 느끼며 자애로운 주 님께 피난하면서 그분에게 향하며 그분을 생각하고 그분에게 애원하며 순수한 숭배를 행하는 것이다. 이 숭배에는 과시 적인 행동이 들어갈 수 없으며 순수하다. 만일 인내하며 고난에 대한 보상을 생각하고 감사한다면, 그 순간 한 시간은 하 루의 경배로 간주되어 이 짧은 삶이 긴 삶으로 바뀌게 된다. 게다가 어떤 경우에는 일 분이 하루의 경배로 간주되기도 한 다. 어느 날 나의 내세의 친구인 무하지르 하프즈 아흐멧(Muhajir Hafız Ahmed)의 매우 심한 병에 대해 무척 걱정하고 있을 때, 나의 마음에 경고를 보내어 주셨다. “그를 축하하게! 각각의 일 분은 하루의 경배로 간주된다네.” 그렇지 않 더라도 원래 그는 인내하며 감사하며 지내고 있었다.</p>



<p>1 꾸란 21 장(안비야) 83 절</p>



<p>2 꾸란 21 장(안비야) 83 절</p>



<p>3 하디스 부하르가 전함, Tevhid, 35</p>



<p>4 원본에는 총 다섯 가지 관점으로 구성되어있지만 이곳에서는 그 중 두 번째 관점까지만 언급함</p>



<p>5 꾸란 83 장(무따피핀) 14 절</p>



<p>6 (참고) 꾸란 3 장(이므란) 26~27 절</p>



<p>7 예배, 단식, 회사, 두아 등</p>



<p></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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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예배의 중요성</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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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CDATA[admin]]></dc:creator>
		<pubDate>Thu, 26 Sep 2024 10:57:41 +0000</pubDate>
				<category><![CDATA[AFTERLIFE]]></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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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다섯 번째 말씀 자비로우시고 자애로우신 하나님의 이름으로 إِنَّ اللَّهَ مَعَ الَّذِينَ اتَّقَوا وَالَّذِينَ هُم مُحْسِنُونَ “실로 하나님은 타끄와1를 가진 자들과 선을 실천하는 이들과 함께하시니라”2 예배를 드리는 것과 큰 죄들을 저지르지 않는 것이 얼마만큼 본질적인 인간됨의 의무인지, 얼마만큼 본능적인 것이며 인간의 창조에 맞는 결과인지 보고 싶다면 다음과 같은 비유적인 짧은 이야기를 [&#8230;]]]></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
<p><strong>다섯 </strong><strong>번째 </strong><strong>말씀</strong></p>



<p>자비로우시고 자애로우신 하나님의 이름으로</p>



<p><strong>إِنَّ اللَّهَ مَعَ الَّذِينَ اتَّقَوا وَالَّذِينَ هُم مُحْسِنُونَ</strong></p>



<p><strong>“</strong><strong>실로 </strong><strong>하나님은 </strong><strong>타끄와1</strong><strong>를 </strong><strong>가진 </strong><strong>자들과 </strong><strong>선을 </strong><strong>실천하는 </strong><strong>이들과 </strong><strong>함께하시니라”2</strong></p>



<p>예배를 드리는 것과 큰 죄들을 저지르지 않는 것이 얼마만큼 본질적인 인간됨의 의무인지, 얼마만큼 본능적인 것이며 인간의 창조에 맞는 결과인지 보고 싶다면 다음과 같은 비유적인 짧은 이야기를 들어보게나.</p>



<p>전시상황에서 어떤 연대에 두 명의 병사가 있었다. 그들 중 한 명은 훈련받은, 근면한 병사이며 다른 한 명은 미숙한, 자기중심적인 병사였다. 근면한 병사는 훈련과 전쟁에 집중하며 식량과 배급량을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를 먹여 주는 것, 그의 장비를 제공해주는 것, 그가 아프면 치료해 주는 것, 심지어 필요하면 먹이를 입 까지 먹여주는 것은 나라의 책임이며, 그의 기본적인 책임은 훈련과 전쟁에만 집중하는 것임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양식이나 장비와 관련된 몇몇 업무를 하기도 하였다. 가마솥을 끓이기도 하고 큰 냄비를 설거지하여 가져다주기도 하였다. 그에게“무엇을 하는가?”라고 물으면, “나라를 위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라고 하였고, “생활비를 위하여 일하고 있습니다”라고 하지 않았다.</p>



<p>다른 식탐이 많은 훈련병은 훈련이나 전쟁을 신경 쓰지 않고 “그것은 나라의 일이야. 나랑 무슨 상관이야”라고 하며 항상 생활비를 생각하면서 그것만 신경쓰며 연대에서 떠나 시장으로 가서 쇼핑하곤 하였다. 어느 날 훈련받은 친구가 그에게 말하였다.</p>



<p>“형제여, 당신의 근본적인 업무는 훈련과 전쟁을 하는 것이며 그 목적을 위해 이곳에 데려와 졌다네. 왕을 신뢰하게나! 그분은 당신을 굶게 하지 않을 것이라네. 그것은 그분의 책임이며 더군다나 당신은 무능력하며 빈곤하기 때문에 어느 곳에서나 스스로 양식을 챙길 수가 없다네. 또한 현재는 전쟁과 전시상황이라네. 또한 그들은 당신에게 ‘반역자’라고 하며 벌을 줄 수 있다네. 그렇다네. 두 가지의 의무가 우리에게 보이고 있네. 하나는 왕의 의무로 우리를 먹여 주는 것이며 우리도 가끔 그분이 시키신 일을 한다네. 다른 하나는 우리의 의무로 훈련하는 것 그리고 적과 싸우는 것이라네. 그리고 왕은 우리에게 시설을 제공하면서 도우신다네.”</p>



<p>만일 그 부랑자 같은 병사가 훈련받은 병사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얼마나 위험한 상황에 놓일 것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p>



<p>나의 게으른 자아여! 그 휘몰아치는 싸움터는 폭풍우와 같은 현세의 삶이다. 그 연대로 나누어진 군대는 인간의 사회이다. 그 연대는 이 시대의 이슬람 집단이다. 그 두 명의 병사의 경우 한 명은 종교적인 의무를 알아서 실행하며 큰죄들을 피하고 죄들을 저지르지 않도록 자아 또한 사탄과 싸우는 타끄와(Takva)를 가진 무슬림이다. 다른 한 명은 양식을 실제로 주시는 분을 비난할 만큼 생활비를 버는 것에 빠져 종교적인 의무를 수행하지 않고 생활비를 버는 길에서 마주치는 죄를 저지르는 실패 하고 타락한 사람이다. 그리고 그 훈련과 규칙은 예배를 비롯한 숭배하는 것이며 그 전쟁은 자아 및 욕구, 사탄 및 사탄 같은 인간들과 싸우며 죄와 비도덕적인 품행으로부터 마음과 영혼이 벗어나 영원한 파멸로부터 보호되는 것이다. 그 두 가지의 의무 중 하나는 (왕이 사람들에게) 삶을 주며 먹여주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우리가) 삶을 주며 먹여 주시는 분을 경배하며 간청하는 것이며 그분에게 의탁하며 신뢰하는 것이다.</p>



<p>그렇다. 가장 빛나는 ‘아무것도 필요 없으신 분의 미술의 기적’과 ‘부양하시는 분의 지혜로운 경이로움’인 생명을 누군가 부여하시고 만드셨다면, 양식으로 그 삶을 먹여주며 유지하게 하는 이 또한 그분이시다. 그분 외에 다른 이는 될 수 없다. 증거를 원하는가? 제일 약하며 어리석은 동물은 제일 잘 먹여진다. (과일에 있는 벌레 또는 물고기처럼) 또한 제일 무능력하여 연약한 피조물은 제일 좋은 식량을 먹는다. (유아와 새끼들처럼) 그렇다. 허용된(할랄) 양식을 얻는 방법은 능력과 의지가 아니라 오히려 무능력함과 약함이라는 것을 알고 싶다면 물고기와 여우. 새끼와 야수, 나무와 동물을 비교하면 충분할 것이다.</p>



<p>따라서 생활비를 벌기 위해 예배를 포기하는 사람은 훈련을 그만두고 방어막을 떠나 시장에서 구걸하는 병사와 같다. 하지만 예배를 드리며 ‘전능하고 관대하고 양식을 주시는 분’의 자비의 부엌에서 자신의 배급량을 구하는 것, 타인에게 부담이 되지 않도록 직접 구하러 가는 것은 좋고 용감한 것이며 그 또한 하나의 숭배인 것이다.</p>



<p>또한 인간은 숭배를 위하여 창조된 존재임을 그의 본능과 정신적인 장치를 보면 알 수 있다. 왜냐하면 현세의 삶에 필요한 일들과 능력의 측면에서 인간은 제일 낮은 참새조차 따라갈 수 없지만, 정신과 내세의 삶에 필요한 지식과 필요함을 느끼며 애원하는 것과 숭배의 측면에서는 동물들의 왕이나 사령관과 같기 때문이다.</p>



<p>즉 나의 자아여! 만일 현세의 삶을 본질적인 목적으로 두고 그것을 위하여 지속해서 노력한다면 제일 낮은 참새와 같이 판단될 것이다. 만일 내세의 삶을 본질적인 목적으로 두고 이 삶도 그것의 수단이나 경작지로 만들며 그에 따라 노력한다면, 그때 모든 동물의 사령관과 같이 되며 이 세상에서 전능하신 창조주의 총애를 받으면서 간절하게 기도하는 종이 됨과 동시에 영광스럽고 존경받는 손님이 될 것이다.</p>



<p>이처럼 바로 당신 앞에 두 가지의 길이 있으며 원하는 길을 선택할 수 있다. 가장 자애로우신 분으로부터 올바른 길과 성공을 원하라….</p>



<figure class="wp-block-image size-large"><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width="1024" height="642" src="http://koreanur.com/wp-content/uploads/2024/09/islamic-4502453_1920_edited-1024x642.jpg" alt="" class="wp-image-44" srcset="https://koreanur.com/wp-content/uploads/2024/09/islamic-4502453_1920_edited-1024x642.jpg 1024w, https://koreanur.com/wp-content/uploads/2024/09/islamic-4502453_1920_edited-300x188.jpg 300w, https://koreanur.com/wp-content/uploads/2024/09/islamic-4502453_1920_edited-768x481.jpg 768w, https://koreanur.com/wp-content/uploads/2024/09/islamic-4502453_1920_edited-800x501.jpg 800w, https://koreanur.com/wp-content/uploads/2024/09/islamic-4502453_1920_edited.jpg 1280w" sizes="auto, (max-width: 1024px) 100vw, 1024px" /></figure>



<p>1 타끄와(Takva): 자신의 의지를 하나님을 경배하는 데에, 자신의 이성을 하나님을 아는 데에, 자신의 마음을 하나님을 사랑하는 데에, 자신의 양심을 하나님을 보고 싶어 하는 열정을 가지는 데에 사용하는 것</p>



<p>2 꾸란 16장(나흘) 128</p>
]]></content:encod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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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예언자 요나(a.s.)의 기도의 비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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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CDATA[admin]]></dc:creator>
		<pubDate>Thu, 26 Sep 2024 10:56:17 +0000</pubDate>
				<category><![CDATA[Allah]]></category>
		<category><![CDATA[Bediuzzaman Said Nursi]]></category>
		<category><![CDATA[QUR’AN]]></category>
		<category><![CDATA[Risale-i Nur]]></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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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첫 번째 섬광 자비로우시고 자애로우신 하나님의 이름으로 فَنَادٰى فِى الظُّلُمَاتِ اَنْ لاَ اِلٰهَ اِلاَّۤ اَنْتَ سُبْحَانَكَ اِنِّى كُنْتُ مِنَ الظَّالِمِينَ “그도 역경에 처했을 때는 ‘실로 당신 외에는 신이 없나니 당신은 결점이 없으신 분이십니다. 저는 실로 잘못을 저지르는 자가 되었습니다.’라고 하더라”[1] اِذْ نَادٰى رَبَّهُ اَنِّى مَسَّنِىَ الضُّرُّ وَاَنْتَ اَرْحَمُ الرَّاحِمِينَ “그는 [&#8230;]]]></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
<p><strong>첫 </strong><strong>번째 </strong><strong>섬광</strong></p>



<p><strong>자비로우시고 </strong><strong>자애로우신 </strong><strong>하나님의 </strong><strong>이름으로</strong></p>



<p><strong>فَنَادٰى فِى الظُّلُمَاتِ اَنْ لاَ اِلٰهَ اِلاَّۤ اَنْتَ سُبْحَانَكَ اِنِّى كُنْتُ مِنَ الظَّالِمِينَ</strong></p>



<p><strong>“</strong><strong>그도 </strong><strong>역경에 </strong><strong>처했을 </strong><strong>때는 ‘</strong><strong>실로 </strong><strong>당신 </strong><strong>외에는 </strong><strong>신이 </strong><strong>없나니 </strong><strong>당신은 </strong><strong>결점이 </strong><strong>없으신 </strong><strong>분이십니다.</strong></p>



<p><strong>저는 </strong><strong>실로 </strong><strong>잘못을 </strong><strong>저지르는 </strong><strong>자가 </strong><strong>되었습니다.’</strong><strong>라고 </strong><strong>하더라”</strong><a href="https://manage.wix.com/dashboard/239aeec4-7d77-4b1a-b40e-a240d7241feb/blog/6071ae32219a4900c0151dc5/edit#_ftn1" target="_blank" rel="noreferrer noopener">[1]</a></p>



<p><strong>اِذْ نَادٰى رَبَّهُ اَنِّى مَسَّنِىَ الضُّرُّ وَاَنْتَ اَرْحَمُ الرَّاحِمِينَ</strong></p>



<p><strong>“</strong><strong>그는 </strong><strong>주님께 </strong><strong>간구하였노라. ‘</strong><strong>재앙으로 </strong><strong>제가 </strong><strong>괴롭나이다.</strong></p>



<p><strong>당신은 </strong><strong>가장 </strong><strong>자비로우시고 </strong><strong>자애로우시니, </strong><strong>은혜를 </strong><strong>베풀어 </strong><strong>주옵소서.’”</strong><a href="https://manage.wix.com/dashboard/239aeec4-7d77-4b1a-b40e-a240d7241feb/blog/6071ae32219a4900c0151dc5/edit#_ftn2" target="_blank" rel="noreferrer noopener">[2]</a></p>



<p><strong>فَاِنْ تَوَلَّوْا فَقُلْ حَسْبِىَ اللهُ لاَ اِلٰهَ اِلاَّ هُوَ عَلَيْهِ تَوَكَّلْتُ وَهُوَ رَبُّ الْعَرْشِ الْعَظِيمِ</strong></p>



<p><strong>“</strong><strong>만일 </strong><strong>그들이 </strong><strong>돌아선다면 </strong><strong>일러 </strong><strong>가로되 ‘</strong><strong>내게는 </strong><strong>하나님만으로 </strong><strong>충분하니라.</strong></p>



<p><strong>그분 </strong><strong>외에는 </strong><strong>신이 </strong><strong>없으며 </strong><strong>나는 </strong><strong>가장 </strong><strong>높은 </strong><strong>권좌에 </strong><strong>계시는 </strong><strong>그분에게 </strong><strong>의탁함이라.’”</strong><a href="https://manage.wix.com/dashboard/239aeec4-7d77-4b1a-b40e-a240d7241feb/blog/6071ae32219a4900c0151dc5/edit#_ftn3" target="_blank" rel="noreferrer noopener">[3]</a></p>



<p><strong>حَسْبُنَا اللهُ وَنِعْمَ الْوَكِيلُ</strong></p>



<p><strong>“</strong><strong>우리는 </strong><strong>하나님만으로 </strong><strong>만족하나니 </strong><strong>그분은 </strong><strong>가장 </strong><strong>좋은 </strong><strong>대리인이시니라”</strong><a href="https://manage.wix.com/dashboard/239aeec4-7d77-4b1a-b40e-a240d7241feb/blog/6071ae32219a4900c0151dc5/edit#_ftn4" target="_blank" rel="noreferrer noopener">[4]</a></p>



<p><strong>لاَ حَوْلَ وَلاَ قُوَّةَ اِلاَّ بِاللهِ الْعَلِىِّ الْعَظِيمِ</strong></p>



<p><strong>“</strong><strong>오로지 </strong><strong>힘과 </strong><strong>권능은 </strong><strong>가장 </strong><strong>지고하시며 </strong><strong>끝이 </strong><strong>없는 </strong><strong>위대하신 </strong><strong>분인 </strong><strong>하나님에 </strong><strong>속한 </strong><strong>것이니라.”</strong><a href="https://manage.wix.com/dashboard/239aeec4-7d77-4b1a-b40e-a240d7241feb/blog/6071ae32219a4900c0151dc5/edit#_ftn5" target="_blank" rel="noreferrer noopener">[5]</a></p>



<p><strong>يَا بَاقِى أَنْتَ الْبَاقِى يَا بَاقِى أَنْتَ الْبَاقِى</strong></p>



<p><strong>“</strong><strong>영원하신 </strong><strong>분은 </strong><strong>오로지 </strong><strong>당신뿐입니다. </strong><strong>영원하신 </strong><strong>분! </strong><strong>영원히 </strong><strong>존재하시는 </strong><strong>분은 </strong><strong>오로지 </strong><strong>당신뿐입니다. </strong><strong>영원하신 </strong><strong>분!”</strong></p>



<p><strong>لِلَّذِينَ اٰمَنُوا هُدًى وَشِفَۤاءٌ</strong></p>



<p><strong>“</strong><strong>그것은 </strong><strong>믿는 </strong><strong>사람들을 </strong><strong>위한 </strong><strong>길이요, </strong><strong>치료라.”</strong><a href="https://manage.wix.com/dashboard/239aeec4-7d77-4b1a-b40e-a240d7241feb/blog/6071ae32219a4900c0151dc5/edit#_ftn6" target="_blank" rel="noreferrer noopener">[6]</a></p>



<p>31번째 편지의 첫 번째 부분(리살레이누르 모음집 중)은 매 순간, 특히 오후 예배(아스르)와 저녁 예배(마그립)사이에 33번 암송하는 것이 무척 가치가 있는, 위에 언급된 축복받은 구절들의 각각의 많은 빛들 중 한 가지 빛을 보여줄 여섯 가지 섬광이다.<a href="https://manage.wix.com/dashboard/239aeec4-7d77-4b1a-b40e-a240d7241feb/blog/6071ae32219a4900c0151dc5/edit#_ftn7" target="_blank" rel="noreferrer noopener">[7]</a></p>



<p><a href="" target="_blank" rel="noreferrer noopener"><strong>첫 </strong><strong>번째 </strong><strong>섬광</strong></a></p>



<p>메타(Metta)의 아들 예언자 요나(그분에게 하나님의 평화가 깃들기를)의 간절한 기도는 가장 훌륭한 기도이며 또한 가장 효과적으로 받아들여질 수단이 되는 가장 중요한 기도이다.</p>



<p>요나(그분에게 하나님의 평화가 깃들기를)의 유명한 짧은 일화는 다음과 같다.</p>



<p>그를 바다에 빠뜨려 커다란 고래가 그를 삼켰다. 폭풍우가 몰아치는 바다에서, 혼란스럽고 어두 컴컴한 밤에, 모든 곳으로부터 희망이 단절된 상황에서</p>



<p><strong>لا إِلَٰهَ إِلَّا أَنتَ سُبْحَانَكَ إِنِّي كُنتُ مِنَ الظَّالِمِينَ</strong></p>



<p><strong>“</strong><strong>실로 </strong><strong>당신 </strong><strong>외에는 </strong><strong>신이 </strong><strong>없나니 </strong><strong>당신은 </strong><strong>결점이 </strong><strong>없으신 </strong><strong>분이십니다.</strong><a href="" target="_blank" rel="noreferrer noopener"></a><strong>저는 </strong><strong>실로 </strong><strong>잘못을 </strong><strong>저지르는 </strong><strong>자가 </strong><strong>되었습니다.”</strong><a href="https://manage.wix.com/dashboard/239aeec4-7d77-4b1a-b40e-a240d7241feb/blog/6071ae32219a4900c0151dc5/edit#_ftn8" target="_blank" rel="noreferrer noopener">[8]</a></p>



<p>라고 하는 이 간절한 기도는 그에게 아주 빠르게 구원의 수단이 되었다. 이 간절한 기도의 큰 비밀은 다음과 같다.</p>



<p>그 상황에서 원인들은 모두 효력이 없어진다. 왜냐하면 그런 상황에서 그를 구원해 줄, 즉 고래와 바다와 밤과 하늘을 통제할 수 있는 통치력이 있는 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에 맞서 밤과 바다와 고래가 결속되었기 때문이다. 이 세 가지를 한 번에 명령으로 복종시키는 그분만이 그를 구원의 해변으로 데려갈 수 있다. 만일 모두가 그를 섬기며 도움을 주는 자가 된다고 하더라도 전혀 쓸모가 없을 것이다. 이 말은 즉 원인들의 효과가 전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원인들의 원인(하나님) 이외에 다른 그 어떤 피난할 곳이 없음을 눈으로 본 것처럼 확실하게 보았으므로, 유일성의 비밀은 ‘테비드(Tevhid)’<a href="https://manage.wix.com/dashboard/239aeec4-7d77-4b1a-b40e-a240d7241feb/blog/6071ae32219a4900c0151dc5/edit#_ftn9" target="_blank" rel="noreferrer noopener">[9]</a>의 빛 안에서 열려 이 간절한 기도가 갑자기 밤과 바다와 고래를 복종시키게 하였다. 또한 그 ‘테비드’의 빛으로 고래의 배를 잠수함으로 바꿀 수 있었다. 그리고 화산이 분출하는 산과 같은 큰 파도가 이는 공포스러운 바다는 그 ‘테비드’의 빛으로 안전한 평원, 여행할 수 있는 장소로 바뀌어 하늘의 얼굴인 구름을 쓸어버리고 달을 손전등처럼 머리 위에 놓이게 하였다. 모든 방향에서 그를 위협하고 압박하던 그 존재들은 모든 곳에서 그에게 친근한 얼굴을 보여주게 된다. 이렇게 하여 구원의 해변에 도달하게 되어 조롱박 나무 밑에서 주님의 호의로 그를 보살피셨다.<a href="https://manage.wix.com/dashboard/239aeec4-7d77-4b1a-b40e-a240d7241feb/blog/6071ae32219a4900c0151dc5/edit#_ftn10" target="_blank" rel="noreferrer noopener">[10]</a></p>



<p>예언자 요나(그분에게 하나님의 평화가 깃들기를)의 첫 번째 상황보다 우리는 백 배 더 무서운 상황에 처해있다. 우리의 밤은 우리의 미래이다. 등한시하는 눈으로는 그분의 밤보다 백 배 더 어둡고 무섭다. 우리의 바다는 이 갈피를 못 잡는 지구이다. 이 바다의 파도 각각에는 수천 개의 시체가 있으며 그분의 바다보다 수천 배 더 무섭다. 우리의 고래는 우리의 자아의 욕구로써 우리의 영원한 삶을 흔들고 파괴하기 위해서 노력한다. 그 고래는 그분의 고래보다 수천 배 더 해롭다. 왜냐하면 그분의 고래는 오로지 백 년의 삶을 파괴하지만, 우리의 고래는 수천 년을 파괴하기 위해 노력하기 때문이다.</p>



<p>우리의 실제 상황이 이렇다면 우리도 예언자 요나(그분에게 하나님의 평화가 깃들기를)을 따라, 모든 원인들로부터 눈을 돌려 곧장 모든 원인들의 원인인 주님께 피난하며</p>



<p><strong>لا إِلَٰهَ إِلَّا أَنتَ سُبْحَانَكَ إِنِّي كُنتُ مِنَ الظَّالِمِينَ</strong></p>



<p><strong>“</strong><strong>실로 </strong><strong>당신 </strong><strong>외에는 </strong><strong>신이 </strong><strong>없나니 </strong><strong>당신은 </strong><strong>결점이 </strong><strong>없으신 </strong><strong>분이십니다. </strong><strong>저는 </strong><strong>실로 </strong><strong>잘못을 </strong><strong>저지르는 </strong><strong>자가 </strong><strong>되었습니다.”</strong></p>



<p>라고 말해야 한다. 그리고 눈으로 본 것처럼 확신하며 “우리의 등한시함과 타락함으로 인해 우리에 맞서 연합된 미래와 지구 그리고 자아의 욕구에 의한 피해들을 없애는 것은 오로지 그분뿐이며, 미래는 그분의 명령하에 있으며, 지구는 그분의 소관이며, 우리의 자아는 그분의 지시에 따라 움직인다.”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p>



<p>하늘과 땅의 창조주인 하나님 이외에 그 어떤 원인이 있단 말인가? 어느 누가 가장 사소한 우리 마음속의 비밀을 알 수 있단 말인가? 그리고 어느 누가 우리를 위해 내세를 만들어 미래를 빛나게 하며, 이 세상의 무수히 많은 숨 막히게 하는 파도로부터 구할 수 있단 말인가? 당연히 필연적으로 존재하시는 분 이외에 그 어떤 것도 그분의 허락과 명령 없이는 도움도 줄 수 없으며 구조할 수도 없을 것이다.</p>



<p>실제 상황은 이렇다. 예언자 요나(<a href="" target="_blank" rel="noreferrer noopener">그분에게 하나님의 평화가 깃들기를</a>)의 그 간절한 기도의 결과로 그에게 고래가 운송 수단인 잠수함으로, 바다가 평화로운 평원으로, 밤이 부드러운 달빛이 되었다. 그렇다면 우리 또한 그 간절한 기도의 비밀로</p>



<p><strong>لا إِلَٰهَ إِلَّا أَنتَ سُبْحَانَكَ إِنِّي كُنتُ مِنَ الظَّالِمِينَ</strong></p>



<p><strong>“</strong><strong>실로 </strong><strong>당신 </strong><strong>외에는 </strong><strong>신이 </strong><strong>없나니 </strong><strong>당신은 </strong><strong>결점이 </strong><strong>없으신 </strong><strong>분이십니다. </strong><strong>저는 </strong><strong>실로 </strong><strong>잘못을 </strong><strong>저지르는 </strong><strong>자가 </strong><strong>되었습니다.”</strong></p>



<p>라고 해야 한다.</p>



<p><strong>“</strong><strong>실로 </strong><strong>당신 </strong><strong>외에는 </strong><strong>신이 </strong><strong>없나니.”</strong>의 말로 우리의 미래에,</p>



<p><strong>“</strong><strong>당신은 </strong><strong>결점이 </strong><strong>없으신 </strong><strong>분이시다.”</strong>의 말로 우리의 세상에,</p>



<p><strong>“</strong><strong>저는 </strong><strong>실로 </strong><strong>잘못을 </strong><strong>저지르는 </strong><strong>자가 </strong><strong>되었습니다”</strong>의 말로 우리의 자아에 자비의 시선을 끌어당겨야 한다.</p>



<p>그래야 신앙의 빛과 꾸란의 빛나는 달빛으로 우리의 미래가 밝아지게 된다. 또한 우리의 밤의 끔찍한 공포스러움이 평온하고 기쁘게 산책할 수 있는 곳으로 바뀌게 된다. 그리고 계속되는 삶과 죽음의 변화로 수천 년, 수 세기 동안의 파도들 위에 수많은 시체들이 탑승하여 없음으로 내던져진 우리의 지구와 지상에서, 지혜로운 꾸란의 작업대에서 만들어진 정신적인 배와 같은 이슬람의 진리에 탑승하여, 평화롭게 그 바다 위를 구경하며 구원의 해변에 도착하여 우리의 삶의 의무를 끝내게 된다. 그 바다의 폭풍들과 지진들은 영화의 화면처럼 즐거운 풍경들을 새롭게 바꾸며 무섭고 공포스러운 것 대신에 교훈을 얻으려는 시선과 사색을 즐기게 하면서 어루만져주고 밝히게 한다. 또한 꾸란의 비밀로, 사실과 거짓을 판단하는 기준을 제시하는 꾸란의 교육으로, 우리의 자아가 우리에게 탑승하도록 하지 않게 해주며, 그것(꾸란의 교육)이 우리의 운송수단이 되어 우리를 그곳에 탑승하게 하며, 우리의 영원한 삶을 얻기 위한 강력한 수단이 될 것이다.</p>



<p><strong>요약</strong>: 인간은 포괄적인 본성으로 인해 말라리아로부터 고통을 받듯이, 지구의 지진과 떨림으로부터 그리고 모든 천지 만물의 최후의 날의 거대한 지진으로부터도 고통을 받는다. 또한 아주 작은 미생물로부터 무서워하듯이, 천체들로부터 생겨난 유성으로부터도 무서워한다. 또한 자신의 집을 사랑하듯이 거대한 세상도 사랑한다. 또한 자신의 조그마한 정원을 사랑하듯이 끝이 없는 영원한 천국도 간절하게 사랑한다. 그러므로 틀림없이 이러한 인간의 숭배를 받는 분, 주님, 피난처, 구원자, 바라는 대상은 오로지 다음과 같은 분밖에 될 수 없을 것이다. 즉 온 삼라만상이 그분의 통치와 관리하에 있으며 원자와 행성조차 그분의 명령 아래에 있다. 그러므로 당연히 인간들은 예언자 요나(그분에게 하나님의 평화가 깃들기를)처럼 이렇게</p>



<p><strong>لا إِلَٰهَ إِلَّا أَنتَ سُبْحَانَكَ إِنِّي كُنتُ مِنَ الظَّالِمِينَ</strong></p>



<p><strong>“</strong><strong>실로 </strong><strong>당신 </strong><strong>외에는 </strong><strong>신이 </strong><strong>없나니 </strong><strong>당신은 </strong><strong>결점이 </strong><strong>없으신 </strong><strong>분이십니다. </strong><strong>저는 </strong><strong>실로 </strong><strong>잘못을 </strong><strong>저지르는 </strong><strong>자가 </strong><strong>되었습니다.”</strong></p>



<p>라고 해야 할 필요가 있다.</p>



<p><strong>سُبْحَانَكَ لَا عِلْمَ لَنَا إِلَّا مَا عَلَّمْتَنَا ۖ إِنَّكَ أَنتَ الْعَلِيمُ الْحَكِيمُ</strong></p>



<p><strong>“</strong><strong>하나님이여 </strong><strong>영광을 </strong><strong>받으소서.</strong></p>



<p><strong>저희는 </strong><strong>당신이 </strong><strong>가르쳐준 </strong><strong>것 </strong><strong>외에는 </strong><strong>아무것도 </strong><strong>모르나니 </strong><strong>실로 </strong><strong>당신은 </strong><strong>아심과 </strong><strong>지혜로 </strong><strong>충만하심이라.”</strong><a href="https://manage.wix.com/dashboard/239aeec4-7d77-4b1a-b40e-a240d7241feb/blog/6071ae32219a4900c0151dc5/edit#_ftn11" target="_blank" rel="noreferrer noopener">[11]</a></p>



<figure class="wp-block-image size-large"><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width="1024" height="768" src="http://koreanur.com/wp-content/uploads/2024/09/sky-264778_1920-1024x768.jpg" alt="" class="wp-image-38" srcset="https://koreanur.com/wp-content/uploads/2024/09/sky-264778_1920-1024x768.jpg 1024w, https://koreanur.com/wp-content/uploads/2024/09/sky-264778_1920-300x225.jpg 300w, https://koreanur.com/wp-content/uploads/2024/09/sky-264778_1920-768x576.jpg 768w, https://koreanur.com/wp-content/uploads/2024/09/sky-264778_1920-1536x1152.jpg 1536w, https://koreanur.com/wp-content/uploads/2024/09/sky-264778_1920-800x600.jpg 800w, https://koreanur.com/wp-content/uploads/2024/09/sky-264778_1920.jpg 1920w" sizes="auto, (max-width: 1024px) 100vw, 1024px" /></figure>



<p><a href="https://manage.wix.com/dashboard/239aeec4-7d77-4b1a-b40e-a240d7241feb/blog/6071ae32219a4900c0151dc5/edit#_ftnref1" target="_blank" rel="noreferrer noopener">[1]</a> 꾸란 21장(안비야) 87절<br><a href="https://manage.wix.com/dashboard/239aeec4-7d77-4b1a-b40e-a240d7241feb/blog/6071ae32219a4900c0151dc5/edit#_ftnref2" target="_blank" rel="noreferrer noopener">[2]</a> 꾸란 21장(안비야) 83절<br><a href="https://manage.wix.com/dashboard/239aeec4-7d77-4b1a-b40e-a240d7241feb/blog/6071ae32219a4900c0151dc5/edit#_ftnref3" target="_blank" rel="noreferrer noopener">[3]</a> 꾸란 9장(타우바) 129절<br><a href="https://manage.wix.com/dashboard/239aeec4-7d77-4b1a-b40e-a240d7241feb/blog/6071ae32219a4900c0151dc5/edit#_ftnref4" target="_blank" rel="noreferrer noopener">[4]</a> 꾸란 3장(이므란) 173절<br><a href="https://manage.wix.com/dashboard/239aeec4-7d77-4b1a-b40e-a240d7241feb/blog/6071ae32219a4900c0151dc5/edit#_ftnref5" target="_blank" rel="noreferrer noopener">[5]</a> 부하르가 전하는 하디스, Megazi:38<br><a href="https://manage.wix.com/dashboard/239aeec4-7d77-4b1a-b40e-a240d7241feb/blog/6071ae32219a4900c0151dc5/edit#_ftnref6" target="_blank" rel="noreferrer noopener">[6]</a> 꾸란 41장(푸실라트) 44절<br><a href="https://manage.wix.com/dashboard/239aeec4-7d77-4b1a-b40e-a240d7241feb/blog/6071ae32219a4900c0151dc5/edit#_ftnref7" target="_blank" rel="noreferrer noopener">[7]</a>원본에는 총 여섯 가지 섬광으로 구성되어있지만 이곳에서는 그 중 두 번째 섬광까지만 언급함<br><a href="https://manage.wix.com/dashboard/239aeec4-7d77-4b1a-b40e-a240d7241feb/blog/6071ae32219a4900c0151dc5/edit#_ftnref8" target="_blank" rel="noreferrer noopener">[8]</a> 꾸란 21장(안비야) 87절<br><a href="https://manage.wix.com/dashboard/239aeec4-7d77-4b1a-b40e-a240d7241feb/blog/6071ae32219a4900c0151dc5/edit#_ftnref9" target="_blank" rel="noreferrer noopener">[9]</a> 테비드(Tevhid): 모든 것을 오로지 하나님께서 창조하시고 지도하시고 지배하신다는 것을 믿는 것<br><a href="https://manage.wix.com/dashboard/239aeec4-7d77-4b1a-b40e-a240d7241feb/blog/6071ae32219a4900c0151dc5/edit#_ftnref10" target="_blank" rel="noreferrer noopener">[10]</a> <strong>“</strong><strong>하나님이 </strong><strong>그를 </strong><strong>불모의 </strong><strong>해변으로 </strong><strong>구제하니 </strong><strong>그는 </strong><strong>병들어 </strong><strong>있었더라. </strong><strong>하나님은 </strong><strong>조롱박 </strong><strong>나무가 </strong><strong>그의 </strong><strong>위로 </strong><strong>자라게 </strong><strong>하였노라.” </strong>(꾸란 37장(사파트) 145~146절)<br><a href="https://manage.wix.com/dashboard/239aeec4-7d77-4b1a-b40e-a240d7241feb/blog/6071ae32219a4900c0151dc5/edit#_ftnref11" target="_blank" rel="noreferrer noopener">[11]</a> 꾸란 2장(바카라) 32절</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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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예언자 욥(a.s.)의 질병의 의미</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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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CDATA[admin]]></dc:creator>
		<pubDate>Thu, 26 Sep 2024 10:55:34 +0000</pubDate>
				<category><![CDATA[Allah]]></category>
		<category><![CDATA[Bediuzzaman Said Nursi]]></category>
		<category><![CDATA[QUR’AN]]></category>
		<category><![CDATA[Risale-i Nur]]></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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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두 번째 섬광 자비로우시고 자애로우신 하나님의 이름으로 إِذْ نَادَىٰ رَبَّهُۥٓ أَنِّى مَسَّنِىَ ٱلضُّرُّ وَأَنتَ أَرْحَمُ ٱلرَّٰحِمِينَ “욥을 상기하라 그는 주님께 간구하였노라. ‘재앙으로 제가 괴롭나이다. 당신은 가장 자비로우시고 자애로우시니 은혜를 베풀어 주옵소서’”1 인내의 영웅인 예언자 욥(그분에게 하나님의 평화가 깃들기를)의 이 애원함은 이미 경험한 것이며 또한 효과적이다. 우리도 하나님께 애원할 때 이 [&#8230;]]]></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
<p><strong>두 </strong><strong>번째 </strong><strong>섬광</strong></p>



<p>자비로우시고 자애로우신 하나님의 이름으로</p>



<p><strong>إِذْ نَادَىٰ رَبَّهُۥٓ أَنِّى مَسَّنِىَ ٱلضُّرُّ وَأَنتَ أَرْحَمُ ٱلرَّٰحِمِينَ</strong></p>



<p><strong>“</strong><strong>욥을 </strong><strong>상기하라 </strong><strong>그는 </strong><strong>주님께 </strong><strong>간구하였노라. ‘</strong><strong>재앙으로 </strong><strong>제가 </strong><strong>괴롭나이다.</strong></p>



<p><strong>당신은 </strong><strong>가장 </strong><strong>자비로우시고 </strong><strong>자애로우시니 </strong><strong>은혜를 </strong><strong>베풀어 </strong><strong>주옵소서’”1</strong></p>



<p>인내의 영웅인 예언자 욥(그분에게 하나님의 평화가 깃들기를)의 이 애원함은 이미 경험한 것이며 또한 효과적이다. 우리도 하나님께 애원할 때 이 구절을 인용하며</p>



<p><strong>رَبِّۤى اَنِّى مَسَّنِىَ الضُّرُّ وَاَنْتَ اَرْحَمُ الرَّاحِمِينَ</strong></p>



<p><strong>“</strong><strong>주님! </strong><strong>재앙으로 </strong><strong>제가 </strong><strong>괴롭나이다. </strong><strong>당신은 </strong><strong>가장 </strong><strong>자비로우시고 </strong><strong>자애로우시니 </strong><strong>은혜를 </strong><strong>베풀어 </strong><strong>주옵소서”2</strong></p>



<p>라고 해야 한다.</p>



<p>예언자 욥(그분에게 하나님의 평화가 깃들기를)의 잘 알려진 이야기의 요점은 다음과 같다.</p>



<p>오랫동안 수많은 상처로 고통받으며 지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병에 대한 큰 보상을 생각하며, 완전한 인내로 참고 견디며 지냈다. 그 후 자신의 상처들로부터 나온 기생충들이 하나님을 알고 기억하는 기관인 심장과 혀에 영향을 미치자 숭배를 행할 수 없다는 두려움으로, 자신의 편안함을 위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을 숭배하기 위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p>



<p><strong>“</strong><strong>주님! </strong><strong>재앙으로 </strong><strong>제가 </strong><strong>괴롭나이다. </strong><strong>혀로 </strong><strong>당신을 </strong><strong>암송하는 </strong><strong>데, </strong><strong>심장으로 </strong><strong>당신을 </strong><strong>숭배하는 </strong><strong>데 </strong><strong>피해를 </strong><strong>받고</strong></p>



<p><strong>있습니다”3</strong></p>



<p>라고 하며 간절하게 애원하였다. 전능하신 창조주께서는 이 순수하고 진실하며 전혀 다른 의도가 없는 하나님을 위한 그 간절한 애원을 상당히 놀라운 형식으로 받아들이셔서, 그는 완벽한 건강을 부여받아 모든 종류의 자비에 맞는 대상이 되었다.</p>



<p>이 섬광에는 다섯 가지 관점이 있다. 4</p>



<p><strong>첫 </strong><strong>번째 </strong><strong>관점</strong></p>



<p>예언자 욥(그분에게 하나님의 평화가 깃들기를)의 겉으로 보이는 상처와 아픔에 상응하는 우리의 내면적인 정신과 마음의 아픔이 존재한다. 만일 우리의 겉을 안으로, 안을 겉으로 바꾸어 본다면, 예언자 욥(그분에게 하나님의 평화가 깃들기를)보다 더 심한 상처와 아픔이 존재한다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행하는 모든 죄, 우리의 머리속에 들어오는 모든 의심은 정신과 마음에 상처들을 생기게 하기 때문이다.</p>



<p>예언자 욥(그분에게 하나님의 평화가 깃들기를)의 상처들은 단지 이 짧은 현세의 삶을 위협하였다. 하지만 우리의 정신적인 상처는 무척 긴 영원한 삶을 위협한다. 그러므로 예언자 욥(그분에게 하나님의 평화가 깃들기를)보다 수천 배 더 간절한 기도가 필요하다.</p>



<p>그분의 상처에서 나온 기생충들이 심장과 혀에 파고든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들의 죄들로부터 생긴 상처들과 그 상처들로부터 발생한 의심들과 사탄의 속삭임들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호하시길!) 신앙의 장소인 심장의 내부를 파고들어 신앙에 상처를 입힌다. 신앙의 통역자인 혀의 정신적인 기쁨에 또한 파고들어 하나님을 기억하는 것을 혐오하게 만들어 멀어지게 하며 그만두게 만든다.</p>



<p>그렇다. 죄는 심장을 파고들어 검게 만들며 신앙의 빛이 꺼질 때까지 딱딱하게 만든다. 각각의 모든 죄는 불신으로 이끄는 길이 있다. 만일 그 죄로부터 하나님의 용서를 구하며 빨리 없애지 않으면, 기생충이 아니라 정신적인 뱀처럼 커져 심장을 갉아 물어버릴 것이다.</p>



<p>예를 들면, 수치스러운 죄를 남몰래 지은 사람이 만일 다른 사람이 그것을 알게 될까 봐 창피함을 느낀다면, 그때 천사들과 영혼들의 존재함이 그에게 무척 부담을 느끼게 한다. 그래서 아주 조그마한 표시로 그들을 부정함을 원하게 한다.</p>



<p>또한, 지옥의 형벌을 받을 만한 큰 죄를 지은 사람은 지옥에 대한 경고를 들으면 들을수록 (용서를 구함으로써 피하지 않으면) 진심으로 지옥이 존재하지 않기를 원하며 아주 조그마한 표시나 의심이 지옥을 부정할 수 있게 용기를 부여하게 한다.</p>



<p>또한, 의무 예배를 드리지 않으며 숭배의 의무를 실천하지 않는 사람은 아주 작은 의무를 소홀히 하게 되기 때문에 자기 상사로부터 야단을 받고 마음이 아픈 것처럼, 영원한 과거와 미래의 왕의 반복적인 명령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의무행위들에 대한 자신의 게으름이 그에게 매우 괴로움을 느끼게 만든다. 그 괴로움으로 인해 마음속으로 ‘이러한 숭배 의무가 없었더라면!’하는 바람으로 하나님에 대한 적대감을 느끼게 되며 하나님을 부정하는 바람이 생기게 된다.</p>



<p>만일 하나님의 존재하심에 대해 어떠한 의심이라도 그의 마음속에 들어오게 된다면, 완전히 확실한 증거처럼 그에게 다가오게 되어, 소멸하게 만드는 큰 길이 그에게 열리게 된다. 그 불행한 사람은 숭배의 의무로 인한 아주 조그마한 부담 대신 그 부정으로 인해 생기는 그 조그마한 부담보다 수백만 배 더 심한 공포스러운 정신적인 부담을 당하게 된다는 사실을 모른다. 즉 모기에게 물리는 것을 피하다가 뱀에게 물리는 꼴이 되는 셈이다.</p>



<p>이와 같이 다른 것들도 위의 세 가지 예들과 비교하면,</p>



<p><strong>بَلْ رَانَ عَلٰى قُلُوبِهِمْ</strong></p>



<p><strong>“</strong><strong>그들의 </strong><strong>마음들은 </strong><strong>죄악으로 </strong><strong>물들어 </strong><strong>있노라”5</strong></p>



<p>라는 비밀을 알게 될 것이다.</p>



<p><strong>두 </strong><strong>번째 </strong><strong>관점</strong></p>



<p>리살레이누르 26번째 말씀에서 운명의 비밀에 관해 설명했듯이 고난과 아픔들에 대한 세 가지 측면에서 사람들은 불평할 권리가 없다.</p>



<p>첫 번째 측면: 전능하신 창조주께서는 사람에게 입혀주신 신체라는 옷으로 그분의 예술을 보여주고 계신다. 인간을 모델로 하여, 그 신체라는 옷을 자르고, 다듬고, 바꾸고, 고치시며 다양하고 아름다운 이름들의 징후를 보여주신다. ‘치료하시는 분(Şafi)’이라는 이름은 아픔을 필요로 하는 것처럼, ‘일용할 양식을 주시는 분(Rezzak)’이라는 이름 또한 배고픔을 필요로 한다.</p>



<p><strong>مَالِكُ الْمُلْكِ يَتَصَرَّفُ فِى مُلْكِهِ كَيْفَ يَشَۤاءُ</strong></p>



<p><strong>“</strong><strong>재산의 </strong><strong>주인은 </strong><strong>자신의 </strong><strong>재산에 </strong><strong>대해 </strong><strong>원하시는 </strong><strong>대로 </strong><strong>사용하실 </strong><strong>수 </strong><strong>있습니다.”6</strong></p>



<p><strong>두 </strong><strong>번째 </strong><strong>측면:</strong> 삶은 고난들과 아픔들로 인해 정제되며, 완성되며, 강해지며, 발전되며, 결실을 맺으며, 완벽해지며, 자신의 목적을 실현하게 된다. 편한 소파에 앉아 있는 단조로운 삶은 완전히 좋은 것인 “존재함”보다 완전히 나쁜 것인 “없음”에 가까우며 그 방향으로 가게 된다.</p>



<p><strong>세 </strong><strong>번째 </strong><strong>측면:</strong> 이 세상의 영역은 시험의 장이자 근무하는 곳이며 즐거움, 보상, 보수를 받는 장소가 아니다. 이 세상이 근무하는 곳이며 숭배의 장소라면 질병들과 고난들은 (신앙에 영향을 미치지 않거나, 인내한다는 조건 하에) 근무와 숭배의 의미에 적합하게 되며 강화되며, 이때의 매시간은 하루의 경배로 간주되므로 불평하지 말고 감사해야 한다.</p>



<p>그렇다. 경배는 두 가지 부분으로 나뉜다. 하나는 긍정적인 부분이며, 다른 하나는 부정적인 부분이다. 긍정적인 부분은 잘 알려진 것7이다. 부정적인 부분은 질병이나 고난으로 고통받는 자기 자신의 무능력과 빈곤을 느끼며 자애로운 주님께 피난하면서 그분에게 향하며 그분을 생각하고 그분에게 애원하며 순수한 숭배를 행하는 것이다. 이 숭배에는 과시적인 행동이 들어갈 수 없으며 순수하다. 만일 인내하며 고난에 대한 보상을 생각하고 감사한다면, 그 순간 한 시간은 하루의 경배로 간주되어 이 짧은 삶이 긴 삶으로 바뀌게 된다. 게다가 어떤 경우에는 일 분이 하루의 경배로 간주되기도 한다.</p>



<p>어느 날 나의 내세의 친구인 무하지르 하프즈 아흐멧(Muhajir Hafız Ahmed)의 매우 심한 병에 대해 무척 걱정하고 있을 때, 나의 마음에 경고를 보내어 주셨다. “그를 축하하게! 각각의 일 분은 하루의 경배로 간주된다네.” 그렇지 않더라도 원래 그는 인내하며 감사하며 지내고 있었다.</p>



<figure class="wp-block-image size-large"><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width="1024" height="739" src="http://koreanur.com/wp-content/uploads/2024/09/muslim-972544_1920-1024x739.jpg" alt="" class="wp-image-35" srcset="https://koreanur.com/wp-content/uploads/2024/09/muslim-972544_1920-1024x739.jpg 1024w, https://koreanur.com/wp-content/uploads/2024/09/muslim-972544_1920-300x217.jpg 300w, https://koreanur.com/wp-content/uploads/2024/09/muslim-972544_1920-768x554.jpg 768w, https://koreanur.com/wp-content/uploads/2024/09/muslim-972544_1920-1536x1109.jpg 1536w, https://koreanur.com/wp-content/uploads/2024/09/muslim-972544_1920-800x578.jpg 800w, https://koreanur.com/wp-content/uploads/2024/09/muslim-972544_1920.jpg 1920w" sizes="auto, (max-width: 1024px) 100vw, 1024px" /></figure>



<p>1 꾸란 21장(안비야) 83절</p>



<p>2 꾸란 21장(안비야) 83절</p>



<p>3 하디스 부하르가 전함, Tevhid, 35</p>



<p>4 원본에는 총 다섯 가지 관점으로 구성되어있지만 이곳에서는 그 중 두 번째 관점까지만 언급</p>



<p>5 꾸란 83장(무따피핀) 14절</p>



<p>6 (참고) 꾸란 3장(이므란) 26~27절</p>



<p>7 예배, 단식, 회사, 두아 등</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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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하나님의 유일성에 관한 11가지 구절의 의미</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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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CDATA[admin]]></dc:creator>
		<pubDate>Thu, 26 Sep 2024 10:50:24 +0000</pubDate>
				<category><![CDATA[Allah]]></category>
		<category><![CDATA[Bediuzzaman Said Nursi]]></category>
		<category><![CDATA[QUR’AN]]></category>
		<category><![CDATA[Risale-i Nur]]></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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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스무 번째 편지1 (중 첫 번째 부분) بِاسْمِهِ سُبْحَانَهُ 어떤 결점도 없으신 하나님의 이름으로 وَاِنْ مِنْ شَىْءٍ اِلاَّ يُسَبِّحُ بِحَمْدِهِ “영광으로 그분을 찬미하지 않는 것 하나도 없도다.”2 자비로우시고 자애로우신 하나님의 이름으로 لاَ اِلٰهَ اِلاَّ اللهُ وَحْدَهُ لاَ شَرِيكَ لَهُ لَهُ الْمُلْكُ وَلَهُ الْحَمْدُ يُحْيِى وَيُمِيتُ وَهُوَ حَىٌّ لاَ يَمُوتُ بِيَدِهِ [&#8230;]]]></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
<p><strong>스무 </strong><strong>번째 </strong><strong>편지1</strong></p>



<p>(중 첫 번째 부분)</p>



<p>بِاسْمِهِ سُبْحَانَهُ</p>



<p><strong>어떤 </strong><strong>결점도 </strong><strong>없으신 </strong><strong>하나님의 </strong><strong>이름으로</strong></p>



<p><strong>وَاِنْ مِنْ شَىْءٍ اِلاَّ يُسَبِّحُ بِحَمْدِهِ</strong></p>



<p><strong>“</strong><strong>영광으로 </strong><strong>그분을 </strong><strong>찬미하지 </strong><strong>않는 </strong><strong>것 </strong><strong>하나도 </strong><strong>없도다.”2</strong></p>



<p><strong>자비로우시고 </strong><strong>자애로우신 </strong><strong>하나님의 </strong><strong>이름으로</strong></p>



<p><strong>لاَ اِلٰهَ اِلاَّ اللهُ وَحْدَهُ لاَ شَرِيكَ لَهُ لَهُ الْمُلْكُ وَلَهُ الْحَمْدُ يُحْيِى وَيُمِيتُ وَهُوَ حَىٌّ لاَ يَمُوتُ بِيَدِهِ الْخَيْرُ وَهُوَ عَلٰى كُلِّ شَىْءٍ قَدِيرٌ وَاِلَيْهِ الْمَصِيرُ</strong></p>



<p>하나님 외에 다른 신은 없도다.</p>



<p>그분은 한 분이시며 그분의 동반자는 없도다.</p>



<p>천지의 모든 것은 그분의 것이며 오로지 그분에게만 찬미하도다.</p>



<p>삶을 주시는 분은 그분이시며 죽음을 주시는 분 또한 그분이시다.</p>



<p>그분은 영원히 살아계시는 분이시다.</p>



<p>모든 좋은 것은 그분의 손안에 있다.</p>



<p>그분은 모든 일에 전지전능하시도다.</p>



<p>천지의 모든 것과 우리들 모두 그분에게로 돌아가도다.3</p>



<p>새벽 예배(파즈르)와 저녁 예배(마그립) 후에 반복해서 암송하면 아주 많은 보상이 있는데, 정확한 하디스의 소식에 따라 가장 위대한 이름과 같은 가치를 가진 이 하나님의 유일성에 대한 문장에는 11가지의 구절을 내포하고 있다. 그 구절 각각에는 희소식, 양육하시는 분의 유일성의 단계, 가장 위대한 이름의 관점에서 유일성의 위대함과 유일성의 완벽함이 포함되어 있다.</p>



<p>이처럼 크고 높은 진리들의 설명은 다른 리살레이누르 모음집 중 말씀들(Sözler)에서 언급할 것을 약속하며 지금은 간략하게 ‘머리말’과 ‘두 가지 부분’으로 목차 식으로 요약한다.4</p>



<p><strong>머리말</strong></p>



<p>다음에 대해 확실히 알아야 한다.</p>



<p>창조의 가장 높은 목적과 가장 중요한 결과는 <strong>하나님에 </strong><strong>대한 </strong><strong>신앙</strong>(İman-ı billâh)이다.</p>



<p>또한 인류의 가장 높은 지위와 가장 최고 수준은 하나님에 대한 신앙 안에 있는 <strong>하나님을 </strong><strong>아는 </strong><strong>것</strong>(Marifetullah)이다.</p>



<p>또한 진과 인간의 가장 빛나는 행복과 가장 달콤한 은총은 그 하나님을 아는 것 안에 있는 <strong>하나님에 </strong><strong>대한 </strong><strong>사랑</strong>(Muhabbetullah)이다.</p>



<p>또한 인간의 정신과 마음을 위한 가장 순수한 기쁨은 그 하나님에 대한 사랑 안에 있는 정신적인 <strong>황홀감</strong>(Lezzet-i ruhaniye)이다.</p>



<p>그렇다. 모든 본질적인 행복, 순수한 기쁨, 달콤한 은총, 아무것도 첨가되지 않은 맛은 당연히 하나님을 아는 것(Marifetullah)과 하나님에 대한 사랑(Muhabbetullah)에 있다. 그것들은 이들 없이 불가능하다.</p>



<p>전능하신 창조주를 알고 사랑하는 사람은 무한한 행복, 은총, 빛, 신비스러움을 잠재적 또는 실질적으로 받을 수 있다.</p>



<p>그분을 올바로 알지 못하거나 사랑하지 않은 사람은 끝이 없는 정신적이고 물질적인 불행복과 고통 그리고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p>



<p>그렇다. 이 비참한 세상에서 이 부랑자인 인간들 사이에 결실이 없는 이 삶에서, 주인과 보호자도 없이, 전 세상의 왕이라 할지라도 이 불쌍하고 가엾은 사람에게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p>



<p>이처럼 부랑자인 인류 가운데 이 비참하고 일시적인 세상에서 인간이 자신의 주인을 알지 못하고 자신의 소유주를 찾지 못한다면 얼마나 불쌍하며 무의미한 존재인지 모두 알 것이다.</p>



<p>반면 만일 자신의 주인을 찾고 자신의 소유주를 찾는다면, 그 순간 그분의 자비에 피난하고 그분의 권능에 의지하게 되며, 그 공포스러운 세상이 구경하는 장소로 바뀌며 내세를 위한 교역 장소가 될 것이다.</p>



<p><strong>첫 </strong><strong>번째 </strong><strong>부분</strong></p>



<p>이 유일성에 관련된 문장의 11개 구절 각각에는 희소식이 있다. 그리고 그 희소식에는 각각의 치료가 있으며 그 치료에는 각각의 정신적인 맛이 있다.</p>



<p><strong>첫 </strong><strong>번째 </strong><strong>구절: </strong><strong>لاَ اِلٰهَ اِلاَّ اللهُ</strong></p>



<p><strong>“</strong><strong>하나님 </strong><strong>외에 </strong><strong>다른 </strong><strong>신은 </strong><strong>없도다”</strong></p>



<p>에는 다음과 같은 희소식이 있다.</p>



<p>수많은 필요한 것과 무수한 적의 공격에 의해 고통을 받고 있는 인간의 영혼에 이 구절에 얼마나 큰 도움을 청할 수 있길래, 필요한 모든 것들을 확보할 수 있는 자비의 보물의 문이 그에게 열리게 된다.</p>



<p>또한 인간의 영혼에 이 구절이 얼마나 의지할 수 있는 곳이길래, 인간에게 모든 적의 나쁜 것들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절대적인 권능의 주인이신 분, 즉 숭배를 받으시는 분과 창조주를 알게 하여 그의 주인을 보여준다. 또한 보여줌으로써 마음을 완전한 고적함으로부터 구하고 정신을 슬픔으로 인한 아픔으로부터 구하여 영원한 상쾌함과 지속적인 행복을 느끼게 한다.</p>



<p><strong>두 </strong><strong>번째 </strong><strong>구절: </strong><strong>وَحْدَهُ</strong></p>



<p><strong>“</strong><strong>그분은 </strong><strong>한 </strong><strong>분이시다.”</strong></p>



<p>이 구절에는 치료적이며 행복을 주는 희소식이 있다. 그것은 다음과 같다.</p>



<p>삼라만상의 아주 많은 요소와 관계가 있으며 그 관계로 인해 혼란과 고통 속에서 거의 숨이 막힐 지경인 인간의 마음과 정신은 ‘그분은 한 분이시다’라는 구절을 통해 피난처와 보호자를 찾게 되며 그를 모든 혼란과 고통으로부터 구해준다.</p>



<p>즉 ‘그분은 한 분이시다’라고 하며 정신적으로 말하길, “하나님께서는 한 분이시다. 다른 것들로부터 구하며 당신 스스로를 피곤하게 하지 말라. 당신 스스로를 비하하며 그들에게 고마워하지 말라. 그들에게 아첨하며 알랑거리지 말라. 그들 주변을 돌아다니며 구걸하면서 고생하지 말라. 그들로부터 무서워하며 떨지 말라! 왜냐하면 이 삼라만상의 주인은 한 분이시기 때문이다. 모든 것들의 열쇠는 그분의 옆에 있으며, 모든 것들의 고삐는 그분의 손에 있으며, 모든 것은 그분의 명령으로 해결된다. 그분을 찾으면, 모든 원하는 것을 찾는 것이다. 끝이 없는 고마움으로부터, 셀 수 없는 두려움으로부터 구하게 될 것이다.”</p>



<p><strong>세 </strong><strong>번째 </strong><strong>구절: </strong><strong>لَا شَرِيكَ لَهُ</strong></p>



<p><strong>“</strong><strong>그분의 </strong><strong>동반자는 </strong><strong>없도다.”</strong></p>



<p>즉 신성(神聖)과 통치권에는 동반자가 없으며 그분은 한 분이시며 다수일 수가 없다. 그러므로 양육하심, 하시는 일, 창조하심에도 동반자가 있을 수 없다.</p>



<p>이와 반대로 일반적인 통치의 경우에, 군주는 한 명이며 통치권에 동반자가 없지만, 간혹 국정을 수행할 시 그의 수행원들이 그의 동반자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리고 모두가 그분 앞에 직접 나서는 것은 금지되며 수행원들이 “우리에게 먼저 요청하세요”라고 요구한다.</p>



<p>하지만 시작과 끝이 없으신 영원하신 왕인 전능하신 창조주는 그분의 왕국에서 동반자가 없듯이 양육하심에 관련된 일들에 대해서도 조력자와 동반자가 필요 없으시다. 명령과 의지, 힘과 권능이 없다면 그 어떤 것도 그 어떤 것에도 개입할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모든 것을 그에게 직접 요청할 수 있다. 동반자와 조력자가 없으므로 그 요청하는 자에게 “멈추세요! 그분을 직접 만날 수 없어요”라고 말할 수 없다.</p>



<p>이처럼 이 구절은 인간의 정신에 다음과 같은 희소식을 전한다. 신앙을 획득한 인간의 정신은 방해물 없이, 반대편 없이, 간섭 없이 모든 상황에서 모든 요구에서 항상 모든 곳에서 그 시작과 끝이 없으신 영원하신 분, 자비의 금고의 주인, 행복한 보물의 주인이신 영광스럽고 아름다우신 분, 완벽하고 전능하신 분의 앞으로 나아가 그분으로부터 필요한 것들을 요구할 수 있으며, 그분의 자비를 찾고 그분의 권능에 의지해 완전한 편안함과 행복을 얻을 수 있다.</p>



<p><strong>네 </strong><strong>번째 </strong><strong>구절: </strong><strong>لَهُ الْمُلْكُ</strong></p>



<p><strong>“</strong><strong>천지의 </strong><strong>모든 </strong><strong>것은 </strong><strong>그분의 </strong><strong>것이다.”</strong></p>



<p>즉 모든 것은 그분의 소유이다. 당신은 그분의 재산이며 그분의 종이며 그분의 통치 안에서 일하고 있다. 이 구절은 다음과 같은 치료의 희소식을 전하고 있다.</p>



<p>인간아! 당신은 당신 자신을 자신의 소유라고 생각하지 말라. 왜냐하면 당신은 자신을 스스로 관리할 수 없고 그 짐은 무겁기 때문이다. 즉 혼자서 보호할 수 없고 재앙으로부터 피할 수 없으며 그 짐에 필요한 것들을 확보할 수 없다. 그러니 쓸데없이 고민하며 고통받지 말라, 그 재산은 다른 분의 것이다. 그 주인은 권능 하신 분이며 자비로우신 분이시다. 그분의 권능에 의지하고, 그분의 자비를 비난하지 말라. 슬퍼하지 말고 즐겨라. 수고를 버리고, 안녕을 찾아라.</p>



<p>또한 말하길, 당신이 사랑한 그리고 당신과 관계있는 그리고 혼란스러움으로 인해 당신을 비통하게 만든, 고칠 수 없는 이 삼라만상은 어떤 자비로우시고 권능 하신 분의 것이다. 재산을 주인에게 넘기고, 그분에게 맡겨라. 짐의 불쾌함이 아니라 짐의 기쁨을 즐겨라. 그분은 또한 현명하신 분이시며 자비로우신 분이시다. 그분은 재산을 그분이 원하는 대로 이용하시며 관리하신다.</p>



<p>당신이 두려울 때, 학자 이브라힘 하끄처럼</p>



<p>“주인이 무엇을 하는지 봅시다. 그분이 무엇을 하시던지 그것이 가장 좋은 것입니다.”</p>



<p>라고 하며 창문에서 보고, 안으로 들어가지 말라!</p>



<p><strong>다섯 </strong><strong>번째 </strong><strong>구절: </strong><strong>وَلَهُ الحَمدُ</strong></p>



<p><strong>“</strong><strong>오로지 </strong><strong>그분에게만 </strong><strong>찬미하도다.”</strong></p>



<p>즉 찬송과 칭송, 찬사와 감사는 그분을 위한 것이며 그분에게만 적합하다. 즉 이 말은 은총들은 그분의 것이며 그분의 금고로부터 나오는 것이며 그 금고는 고갈되지 않는다. 이처럼 이 구절은 다음과 같은 희소식을 전한다.</p>



<p>인간아! 은총이 사라지는 것에 대해서 고통을 느끼지 말라. 왜냐하면 자비의 금고는 고갈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쾌락이 사라짐에 대해 생각하며 그 고통으로 인해 울지 말라. 왜냐하면 그 은총의 과일은 끝이 없는 자비의 과일이기 때문이다. 나무가 영원하다면 과일이 없어지더라도 그것은 대체될 것이다. 은총의 기쁨 안에 그 기쁨보다 백배 더 기쁜 자비로우신 분의 관심을 생각하고 감사하며 그 기쁨을 백배 더 증가시킬 수 있을 것이다.</p>



<p>명성이 높은 왕이 당신에게 선물로 준 사과의 맛 안에 백 개, 아니 천 개의 사과보다 더 기쁨을 주는 왕의 하사함의 기쁨을 당신에게 느끼게 하며 수여 하는 것처럼&#8230;</p>



<p>이처럼 ‘لَهُ الْحَمْدُ’5의 구절은 찬송과 감사로, 즉 은총으로부터 은총을 부여받음을 느끼며, 즉 은총을 주신 분을 알며 은총을 부여받음을 생각하며, 즉 그분의 자비의 관심과 그분의 동정심의 호의와 은총이 지속적이라는 것을 생각하며, 그 은총보다 천 배 더 맛을 느끼며, 정신적인 기쁨의 문이 당신에게 열린다.</p>



<p><strong>여섯 </strong><strong>번째 </strong><strong>구절: </strong><strong>يُحْيِى</strong></p>



<p><strong>“</strong><strong>삶을 </strong><strong>주시는 </strong><strong>분은 </strong><strong>그분이시다.”</strong></p>



<p>삶을 주시는 분은 그분이시다. 또한 삶을 양식으로 지속하게 하시는 분 또한 그분이시다. 또한 삶을 위해 필요한 것들을 준비하시는 분도 그분이시다. 또한 삶의 높은 목적들은 그분에게 속해 있고 가장 중요한 결과들도 그분과 관련된 것이며 결과의 99%는 그분의 것이다. 그러므로 이 구절은 이처럼 일시적이고 빈곤한 인간에게 소리내어 희소식을 알리며 말한다.</p>



<p>인간아! 당신의 삶의 무거운 짐들을 어깨에 짊어지고 고생하지 말라. 이 삶의 끝을 생각하며 슬퍼하지 말라. 오로지 세속적이며 중요하지 않은 결과들만을 생각하며 이 세상에 온 것에 대해 후회하지 말라. 오히려 이 몸이라는 배(탈 것)에 있는 생명의 기구는 Hayy I Kayyum6의 것이다. 그것의 비용과 필요한 것들은 그분께서 제공하신다. 또한 당신 삶의 무척 많은 목표와 결과들이 있으며 그것은 그분의 것이다.</p>



<p>당신은 그 배에서 오로지 키잡이일 뿐이다. 당신의 의무를 잘하고 임금을 받고 즐겨라. 그 삶이라는 배가 얼마나 가치가 있는지, 얼마나 좋은 이득이 있는지, 그 배의 주인인 그분이 얼마나 관대하신 분이며 자비로우신 분인지 생각하고 기뻐해라. 그리고 감사해라. 그리고 다음과 같은 것을 알고 있어라! 당신의 의무를 진실하게 행할 때 그 배가 생산하는 모든 결과는 당신의 선행이 기록되는 노트에 적힐 것이며, 당신은 불멸의 삶을 확보할 것이며, 당신에게 영원한 삶을 부여한다는 것을….</p>



<p><strong>일곱 </strong><strong>번째 </strong><strong>구절: </strong><strong>وَيُمِيتُ</strong></p>



<p><strong>“</strong><strong>죽음을 </strong><strong>주시는 </strong><strong>분 </strong><strong>또한 </strong><strong>그분이시다.”</strong></p>



<p>즉 죽음을 주시는 분은 그분이시다. 즉 그분은 삶의 의무로부터 제대시키신다. 당신을 이 일시적인 현세에서 장소를 바꾸시며 노동의 부담으로부터 편안하게 하신다. 즉 당신을 일시적인 삶에서 불멸의 삶으로 데리고 가신다. 즉 이 구절은 이러한 일시적인 진과 사람에게 다음과 같이 소리친다.</p>



<p>당신들에게 희소식이 있다! 죽음은 사형이 아니며, 무(無)가 아니며, 소멸이 아니며, 쇠퇴함이 아니며, 영원한 헤어짐이 아니며, 존재하지 않음이 아니며, 우연히 일어난 일이 아니며, 저자 불명의 사라짐이 아니다. 오히려 모든 것을 끝이 없는 지혜와 자비로 하시는 분에 의한 제대이며, 거주지를 바꾸는 것이며, 영원한 행복의 장소로, 진정한 고국으로 보내는 것이다. 당신의 친구들 99%가 모인, 그들을 만나는 중간세상의 문이다.</p>



<p><strong>여덟 </strong><strong>번째 </strong><strong>구절: </strong><strong>وَهُوَ حَىٌّ لاَ يَمُوتُ</strong></p>



<p><strong>“</strong><strong>영원히 </strong><strong>살아 </strong><strong>계시는 </strong><strong>분이시다.”</strong></p>



<p>즉 모든 삼라만상의 피조물들에서 보이는 사랑을 불러 일으키는 완전함, 아름다움, 호의보다 더 무한한 우수한 아름다움, 완벽함, 호의를 가지신 분은 모든 사랑을 받는 대상들에 비해, 오로지 한 가지 아름다움을 비추는 것은 Mâbud-u Lemyezel7과 Mahbub-u Lâyezâl8의 시작과 끝이 없는 영원한 삶이므로 사라짐과 소멸은 없으며, 결함과 결점으로부터 면제된다. 즉 이 구절은 진과 인간과 모든 의식있는 존재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p>



<p>당신들에게 희소식이 있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셀 수 없는 헤어짐으로 인한 상처들을 치료해 주고 연고를 발라주시는 영원한 사랑을 받으시는 분이 계신다. 그분이 계시고 그분이 영원하시므로 다른 것들이 어떻게 되든지 간에 걱정하지 말라. 오히려 그 사랑받는 것들에게서 보이는 당신이 사랑하는 원인인 아름다움, 호의, 미덕, 완벽함은 그 영원한 사랑을 받으시는 분의 끝이 없는 아름다움을 비추는 것의 아주 많은 장막을 지나 꽤 희미한 그림자의 그림자일 뿐이기 때문에 그들의 사라짐으로 당신들이 아파하지 말라.</p>



<p>왜냐하면 그들은 하나의 거울일 뿐이니까. 거울에 비치는 것들이 새롭게 변하는 것은 그분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하나의 징후를 새롭게 하는 것이며 아름답게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분이 계시므로 모든 것이 있는 것이다.”</p>



<p><strong>아홉 </strong><strong>번째 </strong><strong>구절: </strong><strong>بِيَدِهِ الْخَيْرُ</strong></p>



<p><strong>“</strong><strong>모든 </strong><strong>좋은 </strong><strong>것은 </strong><strong>그분의 </strong><strong>손안에 </strong><strong>있다.”</strong></p>



<p>즉, 당신들이 행한 모든 좋은 것들은 그분의 노트에 기록되며 당신이 행하는 모든 선행은 그 분과 함께 기록됩니다. 이 구절은 진과 인간들을 부르며 다음과 같은 희소식을 전한다.</p>



<p>이 불쌍한 자들아! 무덤으로의 여정을 할 때 “아이고! 우리의 재산은 파괴되었고 우리의 노력은 헛수고가 되었네. 이 아름답고 넓은 세상에서 떠나 이 좁은 땅속에 들어와 버렸네.”라고 하지 말라. 비명을 지르며 절망하지 말라. 왜냐하면 당신들의 모든 것들은 보관되고 있고, 당신들이 행한 모든 행위는 기록되며, 당신들이 행한 모든 임무는 기록되고 있기 때문이다. 당신들의 근무에 대해 보상을 하시고, 모든 좋은 것은 그분의 손에 있고, 모든 좋은 것을 할 수 있는 분인 영예로우신 그분은 당신들을 끌어당겨, 일시적으로 땅 밑에서 당신들을 지내게 한 후 그분의 앞에 데려올 것이다.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당신들의 근무와 의무는 끝났으며 당신들의 고생도 끝났다. 즉 편함과 자비로 가고 있으며, 근무와 고생은 끝났고 임금을 받으러 가고 있다.</p>



<p>그렇다. 지난봄의 행위들을 기록한 페이지들과 그것의 근무를 보관하는 상자인 씨앗들과 낱알들을 보호하시고 그다음 해 봄에 꽤 빛나게 하시며 오히려 원래의 것보다 백배 더 풍부하게 보호하시며 펼치시는 영광스럽고 전능하신 분은 당연히 당신들 그리고 당신들 삶의 결과 또한 그러한 방식으로 보호하실 것이다. 그리고 당신들의 근무에 대해 아주 풍부하게 보상하실 것이다.</p>



<p><strong>열 </strong><strong>번째 </strong><strong>구절: </strong><strong>عَلٰى كُلِّ شَىْءٍ قَدِيرٌ وَهُوَ</strong></p>



<p><strong>“</strong><strong>모든 </strong><strong>일에 </strong><strong>전지전능하신 </strong><strong>분이시다.”</strong></p>



<p>즉 그분은 한 분이시며, 유일하시고 모든 것에 대해 권능이 충분하시다. 또한 그 어떤 것도 그분에게 부담스럽지 않다. 봄을 창조하시는 것은 꽃 한 송이를 창조하신 것만큼 그분에게 쉬운 일이며, 천국을 창조하시는 것은 봄을 창조하는 것처럼 그분에게 편한 일이다. 매일, 매년, 매 세기에 계속 새롭게 창조하시는 무수한 예술 작품들은 무한한 권능임을 수없이 많은 언어로 증언한다. 이처럼 이 구절 또한 다음과 같은 희소식이 있으며 다음을 전한다.</p>



<p>인간아! 당신이 한 근무와 숭배는 아무 쓸모 없이 한 것이 아니다. 보상받는 곳과 행복한 장소가 당신을 위해 준비되어 있다. 당신의 이 일시적인 세상 대신에 영원한 천국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당신이 경배하며 알고 있던 영광스러운 창조주의 약속을 믿고 신뢰해라. 그분께서 약속하신 것을 지키지 않으신다는 것은 있을 수도 없는 일이다. 그분의 권능은 그 어떤 부족함도 없으며, 무능력함이 있을 수 없다. 당신의 작은 정원을 창조하듯이, 천국 또한 당신을 위해 창조하실 것이며, 창조하셨으며, 당신에게 약속하신다. 약속하셨으므로 당연히 당신을 그 안으로 데려가실 것이다.</p>



<p>우리가 보듯이 매년, 지상에서 삼십만 가지 이상의 동물들과 식물들의 종과 민족들을 완벽한 규칙과 균형으로 완전히 빠르고 쉽게 부활 시켜 펼치신다.</p>



<p>그렇다면 당연히 이러한 영광스럽고 전능하신 분은 그분의 약속을 지키실 능력이 있다.</p>



<p>또한 절대적인 전능하신 분은 매년 부활과 천국의 표본들을 수천 가지의 형식으로 창조하신다.</p>



<p>또한 모든 하늘의 말씀들로 영원한 행복을 약속하시며 천국의 희소식을 전하시는 분이시다.</p>



<p>또한 그분의 모든 일과 행동들은 옳고 진실하며 진지하다.</p>



<p>또한 그분의 모든 작품의 증언으로 모든 완벽함이 그분의 무한한 완벽함을 입증하며 증언한다.</p>



<p>또한 그 어떤 결점이나 부족함이 없으시다.</p>



<p>더군다나 약속을 어기는 것과 포기하는 것, 거짓말과 속이는 것은 가장 추한 것이며 부족함과 결점인 것이다.</p>



<p>그러므로 당연히 그 Kadîr-i Zülcelâl9, Hakîm-i Zülkemâl,10 Rahîm-i Zülcemâl11 은 약속을 지키실 것이며 영원한 행복의 문을 여실 것이다. 아담의 원래의 거주지였던 천국에 신앙자들을 들어가게 할 것이다.</p>



<p><strong>열한 </strong><strong>번째 </strong><strong>구절: </strong><strong>وَاِلَيْهِ الْمَصِيرُ</strong></p>



<p><strong>“</strong><strong>천지의 </strong><strong>모든 </strong><strong>것과 </strong><strong>우리들 </strong><strong>모두 </strong><strong>그분에게로 </strong><strong>돌아가노라.”</strong></p>



<p>교역과 공적인 업무를 위한 중요한 임무들로 이 시험장소인 세상에 보내진 사람들은 서로 교역을 하며 의무를 끝내고, 근무를 완성한 후에 그들을 그곳으로 보내신 영광스러움을 가지신 창조주에게 다시 돌아갈 것이며 관대하신 주인과 만나게 될 것이다. 즉 이 일시적인 곳에서 떠나 영원한 곳에서 그분의 장엄함 앞에서 명예롭게 될 것이다.</p>



<p>즉 원인들의 혼란과 수단들의 어두운 장막에서 벗어나 영원한 신의 왕국에서 장막 없이 자비로우신 주님을 만나게 될 것이다. 모두 직접 자신의 창조주, 경배받으시는 분, 주님, 주인, 소유자가 누구인지 알게 될 것이며 찾게 될 것이다. 즉 이 구절에는 다른 모든 희소식보다 더 좋은 희소식을 다음과 같이 전한다.</p>



<p>인간아! 어디로 가는지 그리고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알고 있는가? (리살레이누르 32번째 말씀의 마지막 부분에서 말한 것처럼) “현세에서 천 년간의 행복한 삶은 천국에서의 한 시간에 미치지 못하며 그 천국에서의 천 년의 삶조차 주님의 아름다움을 보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Cemîl-i Zülcelâl12 의 자비로움의 왕국과 그분의 앞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p>



<p>깊이 빠져 마음을 사로잡힌 사랑하는 것들과 이 세상의 모든 피조물 위에 보이는 아름다움과 좋음은 그분의 아름다움을 비추는 것과 그분의 좋은 이름들의 하나의 그림자이다. 천국의 전체는 모든 매력으로 자비를 비추는 것이며 모든 욕망과 사랑과 매력에 빠지는 것들과 매력들은 사랑의 섬광인 Mâbud-u Lemyezel13, Mahbub-u Lâyezâl14이 계시는 곳의 영역으로 가고 있는 것이며 영원한 연회장소인 천국으로 불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무덤의 문으로 울면서 들어갈 것이 아니라 웃으면서 들어가라.</p>



<p>또한 이 구절은 다음과 같은 희소식을 전한다.</p>



<p>인간이여! 소멸, 존재하지 않음, 없음, 암흑, 잊혀짐, 부패, 흩어짐, 군중 속으로 사라지고 있다고 상상하며 생각하지 말라! 당신은 소멸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함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존재로 이송되고 있는 것이다. 암흑이 아니라 빛의 세상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당신의 실제 주인과 모든 것들의 실제 주인에게 가고 있는 것이다. 영원한 과거의 왕에게로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군중 속의 사라짐이 아니라 유일성의 영역으로 쉬러 갈 것이다. 헤어짐이 아니라 만남으로 향하고 있는 것이다.</p>



<figure class="wp-block-image size-large"><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width="1024" height="683" src="http://koreanur.com/wp-content/uploads/2024/09/book-5336298_1920-1024x683.jpg" alt="" class="wp-image-18" srcset="https://koreanur.com/wp-content/uploads/2024/09/book-5336298_1920-1024x683.jpg 1024w, https://koreanur.com/wp-content/uploads/2024/09/book-5336298_1920-300x200.jpg 300w, https://koreanur.com/wp-content/uploads/2024/09/book-5336298_1920-768x512.jpg 768w, https://koreanur.com/wp-content/uploads/2024/09/book-5336298_1920-1536x1024.jpg 1536w, https://koreanur.com/wp-content/uploads/2024/09/book-5336298_1920-576x384.jpg 576w, https://koreanur.com/wp-content/uploads/2024/09/book-5336298_1920-1152x768.jpg 1152w, https://koreanur.com/wp-content/uploads/2024/09/book-5336298_1920-800x533.jpg 800w, https://koreanur.com/wp-content/uploads/2024/09/book-5336298_1920-165x109.jpg 165w, https://koreanur.com/wp-content/uploads/2024/09/book-5336298_1920.jpg 1920w" sizes="auto, (max-width: 1024px) 100vw, 1024px" /></figure>



<p>1 리살레이누르 전집 중 편지들 (Mektubat)</p>



<p>2 꾸란 17장(이스라) 44절</p>



<p>3 하디스</p>



<p>-부하르가 전함, 아잔, 155p</p>



<p>-무슬림, 지키르: 28, 30, 74, 75, 76p</p>



<p>-티르미드, 메바큿, 108p, 하즈,104p</p>



<p>4 원본에는 두 가지 부분으로 구성되어있지만 이곳에서는 그 중 첫 번째 부분까지만 언급</p>



<p>5 오로지 그분에게만 찬미하도다.</p>



<p>6 Hayy I Kayyum: 삼라만상의 존재를 유지하시며 영원히 살아계시는 분</p>



<p>7 Mâbud-u Lemyezel: 끝이 없는 숭배를 받으시는 분</p>



<p>8 Mahbub-u Lâyezâl: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숭배를 받으시는 분</p>



<p>9 Kadîr-i Zülcelâl: 영광스러움을 가지신 전능하신 분</p>



<p>10 Hakîm-i Zülkemâl: 모든 완벽함을 가지신 현명하신 분</p>



<p>11 Rahîm-i Zülcemâl: 아름다움을 가지신 자비로우신 분</p>



<p>12 Cemîl-i Zülcelâl: 영광스러움을 가지신 아름다우신 분</p>



<p>13 Mâbud-u Lemyezel: 끝이 없는 숭배를 받으시는 분</p>



<p>14 Mahbub-u Lâyezâl: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숭배를 받으시는 분</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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