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lief and Unbelief The Words

인간 이외에 다른 피조물들도 숭배를 합니까?

숭배란 오로지 이성이라는 것을 가지고 있는 피조물인 인간만이 하는 특별한 행위가 아니다. 우리 주변에 보이는 새, 곤충 등의 동물들 각자가 특별한 숭배행위를 하는 것처럼 나무, 꽃 등의 식물들 또한 숭배행위를 하고 있다.

오로지 생명이 있는 존재들만 숭배를 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돌, 흙, 태양, 별… 모든 생명이 없는 존재들도 숭배를 하고 있다. 즉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자기만의 특별한 숭배를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모든 피조물이 숭배를 하고 있다는 것을 어디서 알 수 있을까? 바로 꾸란에서 알 수 있다. 몇몇 꾸란 구절에서 아래와 같이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로 하나님은 산천으로 하여금 그와 함께 아침과 저녁으로 합장하여 하나님을 찬양하라 했노라.”[1]

“하늘과 대지의 모든 것이 하나님을 찬미하며 새들은 날개를 펴 찬미하고 있음을 그대는 보지 못하느뇨. 모든것은 제 스스로 경배하고 찬미함을 알고 있으며 하나님은 그들이 행하는 모든 것을 알고 계시니라.” [2]

“칠천과 대지가 그분을 영광되게 하고 그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이 그러하니 영광으로 그분을 찬미하지 않는 것 하나도 없도다. 너희가 그들의 찬미를 알지 못하나 실로 하나님은 자비와 관용으로 충만하심이라.“[3]

위 꾸란 구절들에서 아주 분명하게 모든 피조물들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찬미하고 있음을, 즉 숭배하고 있음을 설명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의 주변에 있는 지각이 없는 생물들과 전혀 움직이지 않는 무생물들이 어떻게 하나님을 경외하며 찬미할 수 있단 말인가?

인간의 직무는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것들을 실천하는 것이며 만일 어떤 사람이 하나님께서 하라고 명령한 것을 실천한다면 그는 바로 숭배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생명이 있든 없든 모든 피조물들이 하나님께서 자신들에게 주어진 의무들을 행한다면 그 피조물은 바로 하나님을 경외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 주제에 대해 베디웃자만(Bediüzzaman)은 이렇게 설명한다.[4]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주의 깊게 살펴 보게나! 생명이 있든, 생명이 없든 모든 피조물들은 하나님의 명령에 절대적으로 복종하고 완벽하게 의무들을 실행하며 숭배를 한다. 일부는 이성이 없으며, 감정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꽤나 이성적으로 또는 질서 있게 직무들을 실행한다. 즉 모든 피조물들은 마부드-빌학(Mabud- Bilhak : 숭배 받기에 마땅하신 하나님) 또는 아미르 무틀락(Amir Mutlak : 절대적으로 모든 것을 지배하시는 하나님)의 명령에 절대적으로 복종하며 숭배를 한다.”

전능하신 창조주께서 피조물 모두에게 각각의 임무들을 부여하셨다. 그들은 자신들의 임무를 전혀 미흡하지 않게 완전한 복종으로 실천한다. 예를 들면 태양은 자신에게 부여된 위치에서 임무를 수행한다. 수천년간 같은 임무를 시행함에도 불구하고 전혀 “나는 지쳤어. 이제는 햇빛과 열을 주고 싶지 않아“ 라고 하지 않으며 완벽하게 의무들을 지속한다. 과수들은 과일을 제공하며, 꿀벌들은 지치지 않는 에너지로 꿀을 만드는 것을 지속한다… 이처럼 모든 피조물들을 나열하면 볼 수 있듯이 그들 모두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질서 있게 복종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자신들에게 부여하신 임무들을 수행하면서 그들을 창조하신 분을 숭배하며 찬미하고 있다.

위에서 언급한 꾸란 구절에서 모든 피조물들이 하나님을 찬미하고 있다는 것을 베디웃자만(Bediüzzaman)은 다음과 같은 예를 들어 설명한다. [5]

“꽃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자수와 예술을 보여주며 몸짓으로 하나님의 이름들을 찬미하고 있듯이 이 지상의 정원도 커다란 꽃과 같다. 무척이나 큰 찬미의 임무를 가지고 있으며 하나님의 이름들을 지상의 언어로 찬미한다. 과일이 조화(하모니)와 아름다움으로 하나님의 유일하심을 공표하고 찬미하는 것처럼, 커다란 나무의 나뭇가지, 나뭇잎, 꽃 등의 모든 부분들로 전시하는 임무를 통해 숭배를 하고 있다. 나무의 단어들인 나뭇잎, 과일, 꽃이 하나님을 찬미하듯이 그와 마찬가지로 이 넓은 하늘이라는 바다의 단어들인 태양, 별들, 달은 창조주인 하나님을 찬미하며 그분의 영광을 찬양한다.”

즉 다시 말하면 완벽하게 창조된 피조물들은 몸짓으로 자신들의 창조주를 찬미한다. 왜냐햐면 작품이 존재하고 보여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예술가의 특징들의 완벽함을 보여준다.

예를들면 어떤 분야에 있어서 전문가인 어떤 사람이 지금까지 어느 누구도 만들지 못한 어떤 것을 발명했다면 그 발명품을 본 사람들은 그 발명가가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 발명품을 본 사람들은 그 발명가를 보지 않더라도 그 전문가를 존경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 발명품은 몸짓으로 그 전문가를 설명하고 있으며 그 전문가가 얼마나 솜씨가 좋은지 알려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주님께서 완벽하게 창조한 모든 피조물들은 자신들만의 몸짓으로 우리의 주님을 설명하며 그의 특징들의 완벽함을 알려주고 있다. 즉 “우리를 만든 창조주의 특징들은 완벽하며 그에게 어떠한 결점도 없으며 우리의 아름다움은 그의 아름다움에서 나온다.” 라고 하며 그들의 창조주인 하나님을 찬미한다.

어떤 성을 예로 들어보자:

무척 예술적이며 섬세한 자수로 장식되어 있는 어떤 궁전이 있다고 치자. 궁전에 있는 모든 돌 각각 하나 하나에 문양이 새겨져 있고 그 궁전 안의 경치나 풍경은 계속해서 수시로 바뀌고 있으며 사람이 옷을 갈아 입는 것처럼 그 궁전의 벽은 각각 다양한 색깔로 바뀌고 그 벽에는 각각의 다양한 문양이 새겨져 있다. 그 섬세한 문양을 주의 깊게 보면 그 궁전의 전체 풍경이 보인다. 그리고 궁전 안의 장식은 계속해서 새로워지며 아름다워진다. 매시간 최상의 음식들로 식탁이 차려지며 치워지고 그 음식들은 아주 맛있으며 식욕을 돋구는 것들… 등

이처럼 완벽한 궁전을 본 사람은 이 솜씨 좋은 전문가에 반하며 “하나님께 축복이 있으소서! 얼마나 완벽하게 만들었소!” 라고 할 것이다. 이 궁전은 자신의 몸짓으로 그 전문가가 얼마나 솜씨가 좋으며, 지식이 많으며, 숙련됐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이 웅장한 세상은 그 궁전과 같다. 달과 태양의 조명들, 별들과 시간의 촛불들은 한가지의 실 또는 줄이며 그 위엄 있는 창조주께서 매년 다른 세상을 그곳에 매달아 보여주신다. 그분은 새로 온 세상의 수천 개의 피조물들의 모양들을 바꾸시며, 완벽하게 정리된 체계 안에서 새롭게 하신다. 지상을 거대한 식탁처럼 매 가을마다 수만 가지 예술품으로 장식하고 각각 다양한 종류의 은총들로 가득 채우신다. 상당히 복잡하고 서로 얽혀 있지만 혼란스럽거나 어수선한 예술품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무척이나 질서 있고 정리된 다양함으로 서로 구별되어진다. 다른 것들도 이처럼 비교해 본다면 이 세상이라는 궁전의 창조주께서 얼마나 완벽하신지 태양이 존재하는 것처럼 명백하게 알게 될 것이다.”[6]

그 궁전은 ‘완벽함의 언어’로 창조주를 찬미하고 있다. 완벽한 예술품을 만드신 전문가의 특징들의 완벽함을 지각이 있으며 생각하는 사람에게 보여준다.

이를 종합해 보면 완벽한 체계와 질서 속에서 창조하신 모든 피조물들은 자신들을 창조한 하나님을 찬미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만 인간과 다른 피조물들 사이에 가장 중요한 차이점이 있다. 인간은 의식하며 숭배를 한다. 경배를 왜 하는지 그리고 창조주에 대한 어떤 책임이 있는지 알고 있다. 이렇듯 경배란 무척이나 광범위하다. 의식이 없는 피조물들은 자신의 한정된 삶의 범위에서 자신도 모르게 경배를 행한다. 이것의 찬미들은 천사들을 대표한다.”[7]

[1] 꾸란 사드장 38장 : 18~19절 [2] 꾸란 누르장 24장 : 41절 [3] 꾸란 이스라장 17장 : 44절 [4] 리살레이누르 모음집중 편지들 (Mektubat) p. 562 [5] 리살레이누르 모음집중 말씀들 (Sözler) p. 691 [6] 리살레이누르 모음집중 말씀들 (Sözler) p. 96 [7] 리살레이누르 모음집중 말씀들 (Sözler) p. 6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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